나의 고백/2012년

특급품

>>>>> 2023. 10. 24. 09:22

2012/02/16

 

김소운 수필 < 특급품 > 

 

비자나무로 만든다는

일본식 바둑판은

모든 조건에 합격한 1급품은

30년 전 값으로 2천 원,

요즘 시세로는 30~40만원은 간다.

이 1급품 위에 또 하나 특급품이란 것이 있다.


나무의 무늬와 치수

 어떤 점에도 1급품과

다른 데가 없으나,
머리카락만한 가느다란 흉터가 보이면

이것이 특급품이다.
물론 값도 1급보다

10퍼센트 정도 비싸다.

 

오랜 세월을 두고 공들여서 기른 나무가

바둑판으로 완성될 직전에
예측하지 않은 사고로

금이 가 버리는 수가 있다.
1급품 바둑판이

목침감으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그것이 최후는 아니다.
금 간 틈으로 먼지나 티가 들지 않도록

헝겊으로 고이 싸서

손이 가지 않는 곳에 간수해 둔다.
1년, 2년, 때로 3년까지 그냥 두어 둔다.
추위와 더위가 몇 차례 없이 반복되고

습기와 건조가 여러 차례 순환한다.

그러는 사이 상처났던 바둑판은

제 힘으로 제 상처를 고쳐서

본디대로 유착해 버리고,
금 갔던 자리에 머리카락 같은

흔적만이 남는다.
언제나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한번 금 간 그 시련을 이겨내는 바둑판은

열에 하나가 어렵다.

한번 금이 갔다가 다시 제 힘으로 붙어진 것은

그 부드럽고 연한 특질을 증명해 보인

이를 테면 졸업 증서이다.
하마터면 목침감이 될 뻔한 비자목 바둑판이

이래서 특급품으로 승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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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이겨낸, 상처를 극복한 사람

그런 사람이 특급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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