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6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처음으로 읽었다.
책을 읽었는데
생각나는 것은 하이데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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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중에서
인간은 그 어떤 특별한 의미없이
그저 세계로 내던져진 자 입니다.
이 내던져짐에는
거룩한 신의 섭리도
정해진 운명도 없이
오직 모든 것은
자기자신에게 맡겨져 있는 겁니다.
따라서 인간은
일단 자신의 내던져짐에 대해서
그리고 모든 것이
자신의 선택과 결단에만
맡겨져 있는 것에 대해서
언제나 불안해 하며
자신의 선택과 결단에 의해서만
존재의 의미가 비로소 밝혀지기 때문에
항상 염려합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이란
자기자신의 내던져짐과
그리고 맡겨짐에 따라
불안해하고 염려하면서
시간 죽이기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선 보통
남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따라
즉, 평균적 일상성을 따라 살아갑니다.
대개 사람들이 그러하듯
자기 자신보다는
자기 밖의 세상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가지며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따라
잡답을 하고
그들을 따라 애매하게 행동함으로써
서로서로 동질화 및 평균화를
꾀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위안을 얻는 것입니다.
하이데거는 이런 일상적 삶을
비본래적 삶이라고 불렀습니다.
진정한 자기자신으로서 사는
본래적 삶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세상사람이라고 하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을
퇴락, 전락 혹은
무너져내림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사람들이
그저 남들이 말하는 대로 따라 말하고
남들이 행동하는 대로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진정한 삶은
무너져 내린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시간죽이기에 불과한
자신의 비본래적 삶이
마치 자기가 선택하고 결단한
자신의 본래적 삶인 것처럼 위장도 하고
활기도 불어넣어
스스로를 위안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시간죽이기에
분주히 몰입하는 동안에는
살아있음을 느끼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간죽이기는
단순히 다른 사람들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진정한 자기로서 살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이데거는
비본래적 삶은
인간을 점차 전락시킨다고 했습니다.
하이데거는 권태란
자신의 존재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염려하는
현 존재로서의 인간이 가지는
가장 근본적인 기분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권태를 벗어나기 위해
시간죽이기를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권태를 벗어나는 방법은 단 하나
실존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실존이란
다른 사람을 따라 말하고 따라 행동하는
세상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자신의 존재가능성을 기획하고
그것을 따라 산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진정한 자기,
본래적 자기로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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