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여 안녕
슬픔아 이제 다시는 보지 말자가 아니다.
슬픔아 안녕 너 거기 있었구나이다.
세상에...
이 제목이 이런 뜻이었는지 처음 알았다.
하마터면 모르고 죽을 뻔 했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랑과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사랑이 있다.
무엇이 정답일까?
이런 아주 오래된
어떻게 보면 역사적 철학적 주제들을
글쓰기 천재 사강이
아주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간다.
내 생각에 사강은
자기 인생을 통해 직접 보여줬듯이
감정적이고 증흑적인 사랑이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인 것 같다.
그러니
사랑이라는 감정도
쉽게 흘러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가벼운 인사로
보낼 수 있지 않았나 싶고
사랑과 슬픔에 대한
그리고 그 감정을 둘러싼
사람들의 모습들이 너무나 생생하다.
아주 재미있는 책을 읽었다.
그리고 감성적으로 섬세하고
이성적으로 아주 명쾌한
멋진 문장들도 참 많았다.
역시 고전은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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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줄곧 떠나지 않는
갑갑함과 아릿함,
이 낯선 감정에 나는 망설이다가
슬픔이라는
아름답고 묵직한 이름을 붙인다.
모래밭에 길게 누워
손안에 모래를 움켜쥐었다가
손가락 사이로
노랗고 보드라운 모래 폭포를
쏟아내기도 했다.
모래 폭포가
시간처럼 모습을 감추고 있다고,
그건 한가로운 생각이라고,
한가로운 생각을 하는 건
기분 좋은 일이라고 느꼈다.
여름이었다.
사람은 뭔가 대단한 가치에
목표를 둘 수도 있지만
경박한 가치에
집착할 수도 있다.
그녀는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게 만들었다.
행복과 유쾌함,
태평함에 어울리게 태어난 내가
그녀로 인해
비난과 가책의 세계로 돌아왔다.
자기 성찰에 너무나도 서툰 나는
그 세계 속에서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
그 생활에는
생각할 자유, 잘못 생각할 자유,
생각을 거의 하지 않을 자유,
스스로 내 삶을 선택하고
나를 나 자신을 선택할 자유가 없었다.
사랑이란
간단한 행위라는 말을 나는
줄곧 들어왔다.
하지만
더 이상 사랑에 관해 그렇게는,
그렇게 무심하고 거친 방식으로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사랑은
내가 두눈을 멀쩡히 뜨고도
꿈 속에 살게 해주었다.
나는 따사롭고 평온한 기분에
잠겨 있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에게 진정으로 타격을 주고
쇠약하게 만드는 건
반복적이고 예측가능한 삶뿐이었다.
아버지와 나는
같은 종류의 인간이었다.
나는 어떤 때는
우리가
아름답고 순수한 방랑자라 믿었고
어떤 때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줄 모르는
딱하고 가망없는
쾌락주의자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를 사랑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가 멋지고 매력적이라고
여겼을 뿐이다.
나는 그가 내게 준 쾌락을 사랑했을뿐
그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나는 떠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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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나이에
자신을 사로잡는 책을 읽음으로써
도달하게 되는 상태가
바로 지성의 밑바탕을 이룬다.
(역자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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