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15
독서가 취미이기는 하나
솔직히 詩는 많이 읽지 못했다.
다른 책 읽듯이
급하게 읽어서 그런지
읽고 나서도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고
(음미할 시간이 없었나?)
다 읽고
남는 것도 없다는
그런 본전 생각까지 더해져,
시집에 손이 가지 않았었다.
글자가 몇개 안되니
성의도 없어 보였고
아무나 그냥 쓰는 거 아닌가하는
그런 생각도 들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아 詩는
이렇게 읽는거였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한편으로는
그동안 그냥 지나쳐 버렸던
아름다운 詩들이
참 많았구나라는
아쉬운 생각도 들었다.
여유를 가지고
내 그간 기억들과
과거 상상력까지 동원해서
천천히 음미하듯
읽었어야 하는 詩들을
학교에서 배웠던 대로
그냥 이게 무슨 뜻일까? 생각하면서
급하게 읽어버리기만 했으니
무슨 감동이 있고
무슨 울림이 있었겠는가 싶다.
이제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
언제 인생이 끝나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나이로 접어들다보니
요즘은 量보다는 質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친구의 숫자보다는
진실한 친구가
있느냐 없느냐가 더 중요하고
세상에 있는 책
다 읽어버리겠다는
그런 무모한 목표보다
나에게 소중한 책
몇권이 있느냐 없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뭐 그런거다.
詩도 굳이 구분하자면
量보다는 質이
더 중요한 장르가 아닌가 싶다.
누가 그랬었던 것 같은데
詩는 나이가 들어야
비로소 제대로 읽힌다고,
이제서야
그 말이 조금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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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삶을 버티는 데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실,
아 이것마저 없다면 하는
그것 하나만 있어도
의외로 버텨지는 게 삶입니다.
미래의 교사가 되길
꿈꾸는 제자들에게
제가 해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육자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신념이
뭔지 아느냐고.
그건 바로
사람은 변한다는 믿음입니다.
그걸 믿지 못하면서
사람을 가르치려 드는 것은
위선이거나 사기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교육자가 꼭 갖고 있어야 할
지혜가 있습니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걸 인정하지 않으면
교육은 훈육이 되기 일쑤입니다.
잘 변하지 않는 사람을
변하게 만들어야 하기에
교육은 힘들고 위대한 것입니다.
우리 웬만한 건
너무 세게 결심하지 맙시다.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관대하라는 말도
스스로에게
너무 강요하게 되면
자신에게 가혹하고
타인에게 굴종하는 일이
되고 맙니다.
목표나 결과에
너무 얽매이지 말되
다른 이들에게
감사와 작은 감동을 줄 만큼
최선을 다하는 삶,
그냥 네가 좋아서,
그냥 당신을 사랑해서,
그냥 오는 길에 네가 생각나서,
그냥 보고 싶어서,
그냥 주고 싶어서
이 선물을
준비했다고 말하듯,
그냥! 내 마음이 움직여서
오늘 하루도
값있게 사는 겁니다.
그냥! 내 마음의 행복은
그런 무목적의 합목적성에서 온다고
저는 믿습니다.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는
나를 버리고
남이 원하는
경쟁을 하게 된 것일까요?
세월은 안으로만 새기고,
생각은 여전히
푸르른 희망으로 가득 찬 사람,
그리하여 내년엔
더 울창해지는 사람,
그렇게 나이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어른으로
늙는 것이 아니라
어른으로
계속 커가면 좋겠습니다.
늚음은 젊음의 반대말도 아니고,
젊음이 모자라거나
사라진 상태도 아닙니다.
늙음은 젊음을
나이테처럼 감싸 안고
더욱 크고 푸른 나무가 되어
쉴만한 그늘을 드리우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
공부는 결코
멈춰서는 안되는 겁니다.
어리석은 자는
한평생 현명한 이를 가까이 섬겨도
참다운 법을 깨닫지 못한다.
국자가 국맛을 모르듯이.
(법구경)
잘나가는 그때가
망가지기 쉬울 때인데
멈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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