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백/2020년

장자, 위대한 우화

>>>>> 2023. 11. 29. 08:01

2020/10/30

 

이런 엄청난 책을 발견하다니!

이 좋은 책을
왜 버리려고 했었는지 모르겠다.

2011년에 나왔던 책이
2016년에 재출간 되었고
그 책을 작년에 그냥
별 생각 없이 구매했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장자니까.

그런데 책을 사놓고도
이상하게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한동안 방치해놨었고
버릴까 말까 고민도 했었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이 책을 다시 읽게 되었고
또 그게 타이밍이 맞았는지
이번에는
너무나 잘 읽히고 너무나 감동적이다.

만날 사람은
언젠가 만나게 되어있고
읽을 책은
언젠가 읽게 되어있는 것인가,

책이 내게로 왔다라는 표현을
다시 한번 제대로 느끼게 해준 책이다.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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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소요유

나는 자연과 구분되는
별개의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연의 연속적 관계망 속에서
상호작용하며
유전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그리하여
굳이 분리되고 고정된
나라는 의식을
내세우지 않는 것이다.

2장. 제물론

나의 욕구를 채우고
이름을 드높이고자
타인과 더불어 소유를 위해
서로 해치고 다투기를
말 달리듯 하여 막을 길이 없으니,
참으로 슬프지 않은가.
게다가 종신토록 시달리고도
제 욕구를 다 채우지 못해
성공을 보지 못하고
극도로 피폐해져도
그 허망한 굴레를 벗어나
실상으로 돌아갈 바를 모르니,
슬프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떤 대상을
특별히 사랑한다는 것은
곧 사랑하는 대상과
사랑하지 않는 대상을 구별하고
그 사랑하는 대상을
소유하려 하는 것이다.
참된사랑은 어떤 대상을
특별히 사랑하지 않는다.

모든 존재는
저마다 독특한 삶의 방식,
즉 각득기의를 지니고 있다.
그러니 올바름이라는 기준도
각기 자신의 마땅함에 따라
달리 결정되며,
따라서 올바른 거처도,
올바른 맛도, 올바른 아름다움도
저마다 다르기 마련이다.

개별자들이 서로 다르다는 것,
그것이야 말로 자연이다.
그렇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모든 개별자는
자기의 시각과 상황에서
자신의 시비를 선택하고
주장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시비를 그치고
자정에 맡길 뿐이다.

나라는 고정된 자의식을
줄여나감과 동시에
각 개별자들의
서로다른 특유한 시각으로부터
구성된 세계를
성찰해야 한다.
원인도 중심도 없이
유전하는 연속적인 세계 안에서
각 개별자들이
각득기의에 따라 각자의 중심을 가지고
평등하게 서로를 실현할 수 있도록
상존하고
자정에 맡겨야 한다.

3장. 양생주

어떤 기준으로 선악이 구분되든,
양극단으로 치우쳐
시비와 다툼을 일으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개별자의 성심이 아니라
극단으로 치우쳐 미끄러진 마음이다.
그러니 피할 일이다.

4장. 인간세

포악한 자 앞에서
애써 인의와 법도를 늘어놓는 것은
남의 못난 점을 이용하여
자신의 잘난 점을 드러내는 것이니,
이를 일러
남을 해치는 것이라고 한다.
남에게 해를 입히면
상대 역시 반드시
그 해를 돌려주게 마련이니,
결국은 해를 입기 마련이다.

하나로 연속된 존재의 실상을 알고
그 안에서 상황이 요구하는
어쩔 수 없는 (부득이)
필요에 부응하는 것
그것이 곧 허심으로
사태에 응하는 행위이다.
말하자면 나의 의도가 최소화되거나
완전히 해소된 상태로
세상에 개입하는 것이다.

상대에 맞설 때도
상대를 길들일 때도
상대를 사랑할 때도
자신의 성심을 내세우지 말고
상대의 상황을 존중하여
그로부터 적합한 방편을 찾아야 한다.

자신의 고유성에 따라
마땅한 방식으로 살아가다 보면
인간 세상의 이런저런 쓸모에
부합될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고유성을 희생하면서까지
그런 쓸모에 부합하려고
애쓰지 말아야 한다.
쓸모에 농락당하거나
그로 인해 자신의 삶이
파괴되지 않도록
자신의 삶을 잘 살피고
경계해야 한다.

5장. 덕충부

거울은 어떤 대상을 비추더라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또 오면 비추고 가면 스러질 뿐,
자취가 남지 않는다.
자취가 남지 않으니
동요가 일어날 일도 없다.

우리가 인위를 사용하여
우리의 욕심을 채우려는 것이
과연 생존만을 위함인지,
오히려 생존욕구를 넘어서는
과도한 욕망이
온전한 삶을 훼손하는 것은 아닌지.
인위적인 행위가
아무리 훌륭하게 보인다 해도
오직 그 의도된 목적만을 이루고
끝나는 경우는 없다.
하나의 연속된 그물망을 이루는
존재 과정에서는
그 무엇도 홀로 진행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의 인위적인 목적은
늘 그 대가를 치르게 되고
그런 대가는 결국
나 자신의 인생을
훼손하는 결과로
돌아오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6장. 대종사

반드시 얻어야 하고
반드시 잃지 말아야 한다는
집착에서 벗어나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순순히 따른다면
애락이 능히 끼어들지 못한다.

꿈에서 깨어날 때,
꿈의 세계는 사라진다.
그 세계는 환영처럼 존재할 뿐이다.
웃어넘길 수 있는 것은
깨어났기 때문이다.
깨어나고 보니
애초부터 문제가 없었음을
아는 것이다.
그러나 꿈이라고 해서
무시해서는 안된다.
꿈은 꿈인채로
충실히 즐겨야 한다.

7장. 응제왕

호랑이와 표범은
가죽 무늬 때문에
사냥꾼을 부르고
재빠른 원숭이와 사냥개는
밧줄에 묶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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