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즐거움

존재와 무

>>>>> 2024. 1. 8. 08:58

 

사르트르

나에게 사르트르는 멋진 사람이었지만
다가가기는 힘든 사람이었다.
가끔 접하게 되는
그의 철학과 문장은 매혹적이었으나
쉽지 않다는 편견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실제 책을 읽어봐도
무슨 소리인지 도대체 모르겠기에
대체 왜 우리나라 철학자들은
대자, 즉자, 대타
이런 평소에 쓰지도 않는 단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지
답답했었고

이런 것들이 왠지
자기들만 똑똑해 보이려고 하는
현학적이고 배타적인 모습이라 생각해서
아예 마음의 문을 닫았었다.

하지만
책을 추천받은 김에
역시 이번에도 어려웠지만
추천받은 책이므로
어렵게 어렵게 읽어봤고
완전히 다 이해는 못한 것 같지만
대강의 내용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에 대한
인간성에 대한 실망과 좌절이
극에 달했었던
세계대전 직후
사람은 그런 존재가 아니다라는
어떻게 보면
희망의 철학을 이야기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선택에 따라서
나는 나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어떻게 보면
주역이나 불교철학과도
상당히 유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책 추천해 주신 분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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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이여, 살며시 미끄러져 가라.
힘을 주지 말고!
(사르트르의 좌우명 중 하나)

사르트르가 보기에 철학이란
모든 것을 알게 해주고,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믿게 해주는
학문이며
모든 학문을 지배하는 학문이었다.

한 인간이
자신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낸
기계나 제도 등이
어느 단계에 이르면
도리어
인간의 행동을 구속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실존의 참된 의미는
탈격, 곧 벗어남에 있다.
인간은 태어날 때
신으로부터 아무런 본질을
부여받지 못했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그러니까
실존을 통해
자신에게 결여된 본질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존재는 자신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미래를 향한 끊임없는 창조를 통해
자신의 본질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실존이라는 말은
거기에서 벗어나다의 의미를 가진
라틴어에서 파생되었다.

나와 타자는 서로 만나자 마자 찢겨져
서로에게 자신의 시선을 통해
자신의 존재론적인 힘을 과시하고
뽐내는
투쟁관계에 돌입하는 것이다.

타자와 나와의 근본적 존재관계가
이처럼 서로의 시선을 통해
투쟁과 갈등으로 귀착된다면
사르트르의 존재론에서 포착되는
인간존재들 사이의 관계는
비극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사르트르는 이 비극적인 관계를
타자는 나의 지옥이다라는 말로 요약한다.

그러나 그뿐만 아니라
타자는
나와 나 자신을 연결해 주는
필수불가결한 매개자로
규정되고 있기도 하다.

사르트르는
타자에게
나와 나 자신 사이를 이어주는
불가결한 매개자,

내가 누구인지를 가르쳐주는 자로서의
존재론적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타자는 나를 바라봄으로써
나에 대한 비밀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타자는
나의 존재를
나에게서 훔쳐가는 존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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