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엄청난 책을 만나다니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기가 힘들다.
심리 철학 에세이라고 적혀있지만
어떻게 보면
종교적인 영적인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마음에 대한, 또는 인생에 대한
이런저런 책을 읽어왔었는데
그런 책들을 모두 종합한 완결판이라고 해야할까
숨 쉬는 것도 잠깐 잊을 정도로 허겁지겁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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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단어로 하지만
듣는 건 느낌으로 하니까
말하는 자와 듣는 자 사이에는
천억 개의 별이 있다
현재는
우리가 영원을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영원은 현재의 크기로 축소되는데
이는 우리가
현재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계속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다가도
어느 순간 딱 멈출 때가 있다.
시인들은 아마 그것을
시적인 순간이라 부를 것이다.
가능한 것에는 이름을 짓고
불가능한 것에는 응답하기.
시는 응답이다.
불가능을 말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에 응답하기 위해 있다.
아직 들리지 않는 것에 대한 응답.
미지의 것에 대한 초조한 기다림과
존재에 대한 강렬한 희망을 담아내는 응답.
성숙한 사람들은
자기 안에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모두 있음을 안다.
부족한 것, 결핍, 흠, 단점, 나쁜 측면을
내 안에 얼마나 보유할 수 있는가,
부정적으로 느껴지거나
이상하고 모호한 것들과
얼마나 공존이 가능한가, 하는 것이 곧
인간의 성숙도를 의미한다.
자신의 흠이나 실수를
받아들일 수 없어서
타인 탓을 하거나 상황 탓을 하며
공격성을 밖으로 토해내거나
과도한 자기 비하, 자기 비난으로
과장된 반응을 하는 이들은
자기 안에 부정적인 면을
그냥 둘 수가 없는 것이다.
이들은 누군가를
좋은 면만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
이상화 하거나
나쁜 것만 가득한 사람으로 만들어
폄하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복잡하고 모호한 나,
알 수 없고 규정할 수 없는
현재의 나를 회피하고
생각으로 통제하기 위해
비현실적인 이상화와 폄하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우리는 오직 현재에 살고
매 순간의 현재는 복잡하고 모호하다.
실시간 내가 경험할 느낌은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
모든 관계의 문제는 감정의 문제이며
매 순간의 경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의 문제다.
실시간 경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경청하면
피할 것도, 없애야 할 것도 없다.
당신이 어떤 사람과
매우 가깝고 친하다고 믿으면서도
평등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기능과 역할을 주고 받는 것일 뿐
진짜 관계는 아니다.
타인을 지나치게 이상화하면서
의존하려 하거나
타인을 무시하고 폄하하면서
함부로 대하는 것은
같은 뿌리를 갖는다.
바로
나에게 근본적으로 결함이 있다라는
생각이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삶의 책임을 각자가 지는 대등한 관계,
서로를 알아가고 귀 기울이는
친밀한 관계 안에서 우리는 성장한다.
익숙한 자기 역할과 패턴을 알아차리고
방어를 단념하는 것에서 관계는 시작된다.
역할과 힘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상대방을 통제하고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이 빚어내는
새로움과 모호함의 매 순간을 직접 경험할 때
우리는 서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열린 시스템으로
진짜 관계로 존재한다.
무한집합을 정의하는 한가지 방법은
그 원소를 셀 때
개념적으로
끝에 도달하지 않는 집합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셀 수 있는 한계가 없다는 것인데,
우리는 이와 유사한 심리적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다.
끝이 없음, 경계가 없음, 제약이 없음,
통제되지 않음 등의 느낌이다.
웅장한 대자연 앞에서 느끼는 경외감,
그와 내가 마치 하나가 된 것 같은 느낌,
한없는 사랑의 감정,
통제되지 않는 분노가 치밀어 올라
누군가를 해칠 것 같은 두려움 등이
그 예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무한을 경험할 때는
대개 깊은 감정, 강렬한 감정을 느낄 때다.
그래, 그들은 마지막 순간에 보았어.
자기가 무엇이었는지.
나, 나 자신이라고 하는 이 모든 드라마는
추측과 어리석은 의지로
그때 그때 즉흥적으로
대응했던 것들에 불과해서
그냥 놓아버릴 수 있는 거였어.
그렇게 꼭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는 걸
마침내 깨닫게 되는 거야.
인생의 모든 것,
모든 사랑, 모든 증오, 모든 기억, 모든 고통은
다 같은 것이었어.
그건 다 같은 꿈이었지.
잠긴 방안에서 꾼 하나의 꿈,
인간으로 존재하는 꿈 말이야.
(트루 디텍티브 시즌 1)
인간은 모두 그 좁은 방안에서
갖가지 꿈을 꾸며
그것을 현실이라 믿는다.
현대인의 믿음과 달리 마음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개인을 초월하는 현상이다.
무의식과 의식이 얽히는 연결의 장이자
관계와의 상호작용이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
자신의 경험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다.
인간은
제한된 의식을 부여 받아
무의식을
결코 직접적으로 알아낼 수 없으면서도
무의식의 계시를 받으며
무의식에 의해 움직이는
그런 운명을 짊어지게 되었다.
이해 바깥에 있는 것을 이해하려는 시도.
참으로 가엽지 아니한가?
하지만 극적이고 엄숙하며 아름답다.
그리고 고통의 원천이다.
순간의 진실은 오직 될 수 있을 뿐,
알아낼 수는 없다.
살면서 무수한 일들을 겪지만,
그중 무엇에 이끌리게 될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의미 있는 사건은 늘 일부에 해당한다.
특별한 감정을 일으킨 장면들,
생생하게 기억되거나
오래 생각하게 하는 일들,
이런 것들을 선택된 사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이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어쩌면 그 사실들이
나를 선택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모든 관계는 순간의 연결을 꿈꾼다.
연결은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있다.
연결의 순간에는 시공간이 없다.
나는 그 세계와 하나로 있다.
나를 잊는다거나
자아가 사라진 것 같은 경험은
바로 이런 연결의 순간을 말한다.
우리가 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향해
수없이 다가가고 만나고
수많은 잡담을 건네는 이유는
연결의 순간을 위해서다.
순간의 진실이 되기 위해서다.
관계는 두 사람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두 사람을 아무리 정확하게 분석하고
이해한다고 해도 파악할 수 없다.
두개의 세계가 얽히어
상호작용하면서
각자의 존재를 만들어 가는
끝없는 생성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각자의 세계는 각자가 건설하는 것이다.
연결하고 푸는 것도
자신의 세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과업이다.
관계의 회복도 그 사람과 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안의 그 사람과 연결되는 것이다.
관계는 무한과 무한의 만남,
무의식과 무의식의 만남이며
그것은
찰나에만 일어나는 연결이다.
이 빛나는 순간의 정신성은
오직 느낄 수 있을 뿐
생각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다.
지금 이 순간의 경험, 실시간 상호작용에는
새로움과 고유함이 있다.
그런 순간에 마음을 열 수 있으려면
자기 삶을 온전히 책임질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어야 한다.
상대방에 대한 예측과 통제를 포기하고
불확실성고 모호함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진짜 관계다.
이를 감당할 수 없어서
미성숙하게 의존하는 사람들은
힘과 권력을 이용한다.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난다고 할 때에는
그의 일부가 나에게 들어와
제 3의 무엇이 되는 것이다.
제 1인 나도 아니고
제 2인 너도 아니고
제 3의 무엇이다.
내가 어떤 이를 사랑한다고 할 때에는
그도 아니고
나도 아닌
제 3의 무엇을 사랑하는 것이어서
그때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제 3의 무엇은 제 4의 무엇으로
제 5의 무엇으로 변이하면서
찾아볼 수 없게 되기에
종종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우리 안에 있는 대상들은
처음에는 분명 바깥에서 온 것이지만
이내 각자의 내부에서 소화하는 과정을 통해
변형되면서
서서히 본래의 출처를 잊는다.
모든 갈등과 긴장을 해소하는 방법은
죽음밖에 없으며
죽음은 어떤 문제도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만물이 안정적 평형상태에 있다면
발생도, 성장도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생명이란
그 자체로 끊임없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는 현재의 연속이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삶,
혹은 좋은 형태란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관계에서 가장 신비로운 것은
연결의 순간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노력한다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관계로 이끄는 우연한 사건은 기획할 수도 없다.
시점도 장소도 대상도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없던 것을 만들어 낼 수도 없고,
오는 것을 막을 수도 없다.
우리가 누군가를 안다고 생각할 때
그것은
얼마나 그 사람의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관계란
나의 의식이 그의 의식을 만나는 것이 아니다.
나의 무의식이, 카오스가
그의 무의식을, 카오스를 만나는 것이다.
우리 안의 무한이
타인의 무한과 마주하니
현기증이 날 수 밖에 없다.
관계는 결코 의도대로 되지 않고
생각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의식 밖에, 통제 밖에 있다.
그래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갖는다.
익숙한 질서, 자아를 무너뜨리고
혼란 속에서
새로 태어나게 하는 진정한 관계는
오직 매 순간에 있다.
연결의 순간,
시간은 멈추고 공간은 사라진다.
주체와 대상이 따로 없다.
영원이고 무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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