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미를 찾아보고자
즉, 사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마음에
책 읽기를 시작한 지 거의 20년...
호기롭게
책 1,000권 읽기를 목표로 했고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했으니까)
왠지 그 정도 책을 읽으면
사는 이유를 알 수도 있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1,000권에 조금 부족한 정도의
책을 읽은 지금!!
드디어! 드디어!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를 알려주는 책을 만났다!!!
한마디로 정리하기는 어렵지만
대략 내가 이해한 바는
삶은
어떤 목표를 달성해야 하거나
특정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이 아니고
(이것은 허상에 불과하고 곧 사라질 것들임)
일상에서 만나는
소중한 인연들과
그때 그때 빛나는 순간들을 만들어 가는 것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들이
그런 순간들을 만들고
그것이 결국 나의 의미를 만든다는 것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중요한 사실을 이제서야 겨우 알게 되었다.
---------------------
인간은 시간적 깊이를 갖는 존재다.
많은 일들이 벌어져도
시간의 깊이를 거치지 않아
그 의미가
일상으로까지 들어오지 못한다면
자기 자신과 진정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늘 바쁘고 그만큼 조급하지만
막상 중요한 것이 뭔지 알기 어렵다.
의미는 고사하고
목적지도 모른채
사소한 것들은 건너뛰고 달려간다.
그런데 그 사소한 것들에
일상의 요체가 담겨 있다면,
우리의 질주와 가속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일까?
삶에는 본래 정해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 광대함, 무한한 가능성을
통제하기 위해
우리는 '나'라고 하는 것을
끊임없이 만들어 낸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 되었든
일시적이고 잠정적일 뿐이다.
역할, 특성, 취향, 욕망, 신념, 생각, 감정 등
나에 관해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들은
전부 가설에 불과하다.
변하지 않는 본질 같은 것은 없다.
확실한 것 같아도
조건이 바뀌면 금방 달라진다.
나라는 것이 가설에 불과하며
끊임없이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그 가실을 지키려고 쩔쩔매지 않고
조금은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누구나 실패는 피하고 싶고
손해 보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
칭찬받고 존경받고 사랑받고 싶어한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유리한 것, 생산적인 것,
쓸모있는 것만 골라서 하다보면
모두가 하는 것을 다만 따라하게 될 뿐이다.
결과적으로 모두 비슷하다.
구별되지 않는다.
정체성이 형성될 틈이 없다.
그래서 고민한다.
나라는 것이 뭐지?
나는 뭘 위해 이렇게 살아온 걸까
우리는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대개 나보다 더 장점이나 매력이 많은 사람을
모방하려 한다.
이러한 모방적 욕망은
본질적으로 존재의 욕망이자
더 완벽하고 완전해지려는 욕망이기 때문에
충족을 모른다.
그토록 원하던 목표나 대상도
이루고 나면
잠시 기쁠 뿐이고
이내 불만과 실망이 찾아든다.
달성하기 전에는
그렇게 간절하고 중요하게 느껴지다가
막상 얻고 나면
별 것 아닌 것처럼 생각되어
다른 것을 찾아 나선다.
추구의 욕망, 모방의 욕망, 존재의 욕망은
아직 손에 넣지 않은
새로운 대상이나 목표를
끝없이 갈구한다.
그래서 우리는 만족하기 어렵다.
끝없이 대상을 바꾸어 나가며
질주할 뿐이다.
자신을 완전히 채워줄 대상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고 생각하지,
자신의 욕망 자체가 허구임은
깨닫지 못한다.
삶은 다만 끝없는 움직임이며
하나의 여정이라는 것,
사실은 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움직이기 위해
목적지가 필요하며
그떄의 목적지도
하나의 상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욕망의 내용에 고착되어
여정의 순간들,
일상의 위대한 순간들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덜 범하게 될 것이다.
내가 어떤 것에 마음을 쓸 때에는
그 대상이 그만큼 가치가 있거나
중요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가 사실에 가깝다.
내 마음 씀으로 인해
그 대상이 내게 가치있고 중요해지는 것이다.
마음을 쓰기 때문에
그 대상이 내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므로
내가 관심을 거두면
더 이상 중요한 방식으로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게 된다.
우리가 마음을 쓰고 돌보는 만큼만
누군가가, 무언가가 중요해진다.
마음 씀이라는 연결을 통해
대상이 내 세계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사랑은
대상이 있어야 가능한 작용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자기 세계를 만드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의미와 방향을 찾으려 하지만,
흡족한 답을 구하지 못한다.
왜 그럴까?
의미는 욕망처럼
얻으려는 마음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뭔가를 더 확보하고 예측하고 통제하려는 마음으로
구할 수 없다.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와, 혹은 누군가와 연결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그 연결을 지속하는 방법이
마음 씀이고 사랑이다.
개체로서의 인간은
죽음으로 사라질 수 있어도,
그가 연결하고 증폭시킨 가치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좋은 관계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빛나는 순간들은
영원히 남으며
생각과 말과 행동은
사람들 사이를 돌고 돌아 멀리 전파된다.
아주 짧은 시기를 살았다고 해도
흔적을 남긴다는 의미에서
인간은 이미 무한이다.
영원불멸의 작품을 남기거나
거대한 기념비를 세워서가 아니라,
서로 만나고 부딪치며
변화시키고 스며들어서 무한이다.
공명은
나와 세계가 함꼐 울리는 것이므로
어느 한쪽에 융합되거나
통일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진동으로 말하고
서로의 진동을 듣는 것이다.
듣기란 통제의 해체이며 체계의 열림이다.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면
관계는 사라진다.
관계의 본질은 생성이고 공명이며,
공명이란 서로를 울리는 것,
들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읽는 즐거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직 나를 만나지 못한 나에게 (0) | 2025.04.26 |
---|---|
좋은 것들은 우연히 온다 (0) | 2025.04.24 |
사적인 계절 (0) | 2025.04.15 |
순간의 빛일지라도, 우리는 무한 (0) | 2025.04.10 |
오염된 정의 (0) | 2025.04.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