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즐거움

단테 <신곡> 인문학

>>>>> 2026. 3. 9. 07:53

 

단테의 <신곡>은 말만 들었었지

읽어볼 엄두도 안나고

사실 이번 책을 보면서

<신곡> 원문을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어지간한

역사적 지식 없이는 독해도 어려워 보였다.

 

그런데 특이한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는데

 

피렌체 출신의 단테가

이렇게 엄청난 고전을 남기게 된 배경이

우리나라 정약용 선생님과

왠지 비슷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었다.

 

단테도 37세에 이미

피렌체 공화국 장관까지 고속 승진하나

그 후 추방되어서

한번도 피렌체에 들어가지 못하고

56세에 사망하게 된다.

그 20년간 이 <신곡>을 썼다고 하는데

 

정약용 선생님도 39세에

영의정 후보로 까지 거론되었다가

강진으로 유배를 가서

거의 20년간 엄청난 책들을 썼는데

(내가 좋아하는 목민심서 포함)

 

두 분의 삶이 정말 유사하지 않은가

 

불멸의 고전은

이렇게 엄청나게 극적인 삶을 산 분들이

그만큼 엄청난 시련을 겪어야만

탄생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단테 문학 연구 전문가가 쓴 책인데

전문가들이 쓴 책 대부분이 그렇듯

본인의 생각과 느낌을

초심자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렵게 썼다.

 

그래도 중간중간 간신히 좋은 문장들은

몇개 발견할 수 있었다.

단테가 <신곡>을 썼던 7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류의 수준은 비슷하구나하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

 

비록 그 끝에 빛이 보이지 않아도

꺽이지 않고 견디는 것,

그것이 삶의 존재로서

인간이 감당해야 할 과제입니다.

 

공허한 삶을 채우고

혼란한 삶을 바로잡고 싶은 마음은

어느 시대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이라면 자연스레 품게 되는 바람이다.

무엇이 옳고 좋으며,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지를
스스로 묻고 고민해야 한다.

 

용감한 사람은

당연히 두려워해야 할 것을

당연한 이유에서,

당연한 방법으로,

당연한 때에 두려워하며,

이를 참고 견딘다.

 

진정한 용기란

두려움의 대상을 식별하고,

두려움과 자신감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는 일이다.

 

선과 악 사이에서 중립을 취하면

악으로 기울기 쉽다.

선으로 가기 위해서는

더 능동적인 실천이 필요하다.

아무것도 안하는 것만으로도

지성은 퇴화하고

악에 가까워지며 인간다움을 잃는다.

 

조절된 분노는 이성에서 나온다.

반면

지나친 분노와 모자란 분노는

이성의 결여에서 나온다.

모자란 분노는 무관심까지 갖춘다.

엄밀히 보아 무관심은

이성에서 벗어난 상태라는 것이다.

 

분노 자체는 죄가 아니다.

정확히 말해,

어떻게 분노하느냐에 따라

죄가 되기도 하고 정의가 되기도 한다.

 

가지려고만 했던 탐욕의 죄인들은

쓰려고만 했던 낭비의 죄인들과 뒤섞여

벌을 받는다. 

 

겸손이란 뭔가를 과하게 하지 않으려

스스로를 통제하는 태도이다.

겸손이란

상대를 받아들이는 마음이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자신을 비워두어야 가능해지는 행동이다.

 

---------

 

지금부터는 원문!

 

위로 날도록 태어난 인간들이여,

어찌하여 약한 바람에도 떨어지는가

(연옥, 12곡 95~96행)

 

저 위에서는

스스로 위대한 왕으로 여기지만,

여기서는 진흙탕 돼지처럼 뒹굴며

메쓰꺼운 경멸만 남길 자가 얼마나 많을지

(지옥, 8곡 35~51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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