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백/2013년

소유냐 존재냐 서문

>>>>> 2023. 10. 31. 10:09

2013/06/02

 

그대의 존재가 적으면 적을수록,

그대의 삶을 덜 표출할수록,
그만큼 그대는 더 많이 소유하게 되고,
그만큼 그대의 소외된 삶은 더 커진다.

(칼 마르크스)

행복의 최대치의 만족은

모든 욕망의 무제한적인 충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며,
그것이 복지상태(웰빙)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우리가 자기 삶을 지배하는

독자적 주인이 되리라는 꿈은
우리 모두가 관료주의 체제라는

기계의 톱니바퀴로 물려들었음을

인식함과 더불어 깨져버렸다.

우리의 사고, 감정, 취미는
매스미디어를 지배하는

산업 및 정부기구에 의해서 조정되고 있다.

경제적 성장은

부강한 나라들에 국한된 것이었으며,
부강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 사이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져왔다.

기술적 진보는

생태학적 위험과 핵전쟁의 위험을

필연적으로 수반해왔고
그 각각의 위험 또는

두가지 위험이 뭉뚱그러져서
모든 문명에, 어쩌면 모든 생명체에

종말을 불러올지도 모른다.

(에피쿠로스)
욕구를 충족시킨다는 의미에서의 쾌락은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없다.
그런 쾌락 뒤에는

필연적으로 불쾌감이 뒤따르며,
그럼으로써 인간은

그의 참 목표, 즉 고통의 부재로부터 멀어진다.

이기주의란?
나는 나를 위한 모든 것을 가지고 싶다.
공유가 아닌 점유만이 내게 즐거움을 준다.
소유가 나의 목표이며
많이 소유하면 할수록 그 만큼

나의 존재가 커지기 때문에
나는 점점 더 탐욕스러워질 수 밖에 없다.

중세사회나 그 밖의 여러 문명사회에서

또한 원시사회에서도
경제행위의 결정요인은

어디까지나 윤리적 규범이었다.

최근의 경제체제는
인간을 위해서 무엇이 좋은가라는 물음보다는
그 체제의 성장을 위해서

무엇이 좋은가라는 물음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이기주의, 자기중심주의

그리고 소유욕이 자리잡지 못한 집단을은
원시적 집단으로,
그 구성원들은 자격 미달의 미숙한 인물들로 비하되었다.

우리의 자기보존본능을 마비시키는 근거는
개개인이

당장 눈앞에서 감당해야 할 희생보다는
차라리 아득해 보이는

막연한 재난 쪽을 택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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