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6/02
소유와 존재의 차이에 대한 이해
자동차, 텔레비전, 여행 등이
오늘날 강박적 소비의
주범이 되고 있다는 사실만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현대인은
능동적 여가활동이라는 말을 흔히 쓴다.
그러나 더 적절한 표현은
수동적 여가활동일 것이다.
동사와 명사에 대한 고찰
동사적으로 존재하는 것들을
명사적으로 소유하려는 것에서 문제가 발생
사랑은 잔인한 여신이다.
모든 신이 그러하듯 이 여신은
인간의 모든 것을 소유하려고 한다.
인간이 자신의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적 자아까지 모두 바칠 때 까지
만족할 줄을 모른다.
이 여신을 섬기는 일은 고통이며,
그 절정은 자기희생이요, 자살이다.
사랑하는 인간
그리고 인간의 사랑을
사랑에 속한 인간으로 만듦으로써
사랑을 인간에게서 격리시켜
그 자체로 독립된 실체로 만듦으로써
사랑을 여신으로
그것도 잔인한 여신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여기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동사 대신 명사를 사용하는 어법의
결정적 요체를 건드린다.
사랑이라는 행위의 추상화에 불과한 명사
사랑이 인간에게서 분리된다.
사랑하는 인간은 사랑에 속한 인간이 된다.
사랑은 여신으로,
인간의 사랑을 투영한 우상으로 변한다.
이 같은 소외과정에서
인간은 사랑을 체험하기를 중단하고,
다만 사랑의 여신에게 굴종하는 것에 의해서
자신의 사랑하는 능력과 묶여 있게 된다.
이렇게 동사를 명사로 대치시키는 경향은
엄청나게 증가했다.
정신과 의사와 상담하는 한 여성의 경우,
과거에는
나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라고 했다면
지금은
나는 문제를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한다
소유의 태도가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권위를 소유하고 있느냐,
아니면 권위로 존재하느냐
합리적 권위는
그 권위에 의존하는 인간의 성장을 촉진시키며
권능을 바탕으로 한다.
비합리적 권위는 권력을 바탕으로 부지되며,
권력에 굴하는 사람들을 착취한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능력에 기초를 둔 권위는
사회적 지위에 기초를 둔 권위에 의해서
밀려나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능력과 권위는
전혀 상관이 없거나 거의 관계가 없다.
진정한 사랑이란
그 대상이 인간이든 나무이든 그림이든
어떤 이념이든 간에
누구인가(또는 무엇인가)를
배려하고 알고자 하며
그에게 몰입하고
그 존재를 입증하며
그를 보고 즐거워하는 모든 것을 내포한다.
그것은 그를 소생시키며
그의 생동감을 증진시킨다.
사랑은 소생과 생장을 낳는 과정이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아무것도 아는 것도 없으며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자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내가 무엇을 행할 것인가이기 보다는
나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이다.
무엇을 얼마나 많이 행하느냐 보다는
선하게 존재하는 것에
비중을 두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행위를 받치고 있는 근본이다.
생기있게 활동하는 사람은
채워짐에 따라 커져서
결코 가득 차지 않는 그릇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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