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씨가 최근 출간한 단편집을 읽고
서재에 꽂혀있던
이 책을 다시 읽게 되었다.
내게 무해한 사람이라는
제목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매력적인 책이어서
일단 사두었고
조금 읽다가 말았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데뷔 초반의 단편들은
신인작가라 그런지
마치 풋과일처럼 깊은 맛은 없었지만
뒤로 갈수록 점점 좋아지더니
마지막 단편에서는
최은영씨의 색이 완전히 드러난다.
이렇게 완성이 되었구나하는
최은영 작가의
성장과정이 느껴진다고 할까
생각해보니
이 책을 샀던 2018년에는
내가 이런 감성적인 문장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그런 상태였다.
새로운 조직에 합류하였고
임원이 되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에서 절치부심하던 때였으니까.
여튼 이 책은
최은영 작가의
풋풋했던 시절 문장들을
만날 수 있는 그런 의미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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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
사랑을 하면서 이경은
많은 일들을
사랑에 빠진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수이의 단단한 사랑을 받고 나니
그렇게 두려워하던
사람들의 시선과
자신데 대한 판단이
예전만큼 겁나지 않았다.
무례한 사람을 만나도
당신은 사랑이 부족하구나,
아무도 당신같은 사람을
사랑해주지 않을테니까라며
그 찌푸린 얼굴을
속으로 비웃을 수 있었다.
어떻게 우리가
두 사람일 수 있는지
의아할 때도 있었어요.
네가 아픈 걸
내가 고스란히 느낄 수 있고,
내가 아프면
네가 우는데
어떻게 우리가
다른 사람일 수 있는 거지?
자신을 보고싶지 않지만,
그런 마음을 읽힐까봐
애써 자신을 바라보던 눈은
기억난다.
혹시나 자신이
마음을 바꾸진 않을지 기대하는
어떻게
그들이 이렇게 끝날 수 있는지
아직 실감할 수 없다는 눈빛이었다.
(지나가는 밤)
어른이 된 이후의 삶이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들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온 마음으로 기뻐하며
그것을 기다린 자신을
반갑게 맞아주고
사랑해주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모래로 지은 집)
왜 이해해야 하는 쪽은
언제나 정해져 있을까
나는 나를 조금도
이해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하기를 강요받고 있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마다
나는 그런 노력이
어떤 덕성도 아니며
그저 덜 상처받고 싶어 택한
비겁함은 아닐지 의심했다.
어린 시절,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
습관이자 관성이 되어
게속 작동하는 것 아닐까.
속이 깊다거나
어른스럽다는 말은
적당하지 않았다.
이해라는 것,
그건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택한 방법이었으니까.
나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나의 자아를 부수고
다른 사람을 껴안을
자신도 용기도 없었다.
나에게 영혼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 영혼은
안전제일이라고 적힌 조끼를 입고
헬멧을 쓰고 있었을 것이다.
상처받으면서까지
누군가를
너의 삶으로 흡수한다는 것은 파멸,
조끼를 입고 헬멧을 쓴 영혼은
내게 그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벼랑끝에 달린 로프 같아서,
단지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만으로도 안도감을 준다.
나에게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되었을까,
나를 세상과 연결시켜준다는,
나를 세상에
매달려 있게 해준다는
안심을 준 사람이.
(고백)
미주가 보기에 진희는
굉장히 예민한 사람이었는데
겉으로는 오히려 둔감해 보였다.
자기 감정만큼이나
타인의 감정에도 예민해서
그런 것 같았다.
나 예민한 사람이니까
너희가 조심해야 돼라는 식이 아니라,
네 마음이 편하다면
내가 불편해져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자신의 예민함을 숨기려고 했다.
시간이 상처를 무디게 해준다는
사람들의 말은
많은 경우 옳았다.
하지만 어떤 일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진상을 알아갈수록
더 깊은 상처를 주기도 했다.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밤,
나를 오해하고 조롱하고 비난하고
이용할지도 모를,
그리하여 나를 낙담하게 하고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이라는 피조물에게
나의 마음을 열어 보여주고 싶은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이야기해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고
나의 신에게 조용히 털어놓았던
밤이 있었다.
(손길)
산다는 건
이상한 종류의 마술 같다고 생각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존재가 나타나
함께하다
한순간 사라져 버린다.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쉽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막으면 막아지고
닫으면 닫히는게 마음이라면,
그러면 인간은 얼마나 가벼워질까.
사람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행복이
얼마나 위태롭고
위험한 것인지 배운 셈이라고
종종 생각하곤 했다.
사람은 그런 식으로
쉽게 행복해질 수 없는 법이라고.
이렇게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
지나간 시간의 정답을 찾듯
모든 것을 물어
알아내고 싶지 않았다.
그럴 이유도 없었다.
(아치디에서)
외로웠고
누구라도 붙잡아
말을 하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실제로 대화가 시작될까봐
겁이 났다.
그건 이상한 감정이어서,
내게 말을 건 사람들은
곧 그 마음을 알아차리고
자리를 떠났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투명하게 알아낼 수 있는
세상의 일이 얼마나 될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알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더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삶의 희미함과 대조되는
죽음의 분명함을.
삶은 단 한순간의 미래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강지희 평론가 해설)
감정을
짧은 호흡의 재치있는 문구나
감각적인 사진으로 압축하고
대체하는 것에 익숙해진
사회 속에서
이 시대가 망각해가는 감정의 결을
섬세한 손으로 발굴해내는
최은영의 존재가
더없이 매혹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작가는
다만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혼돈일지라도
그것이
세계 종말 이상의 사건이
될 수도 있음을 전제한 채,
나비가 날개를 파닥이듯
얇게 흔들리는 마음의 무늬들을
그리는데 집중한다.
이 소설은
사랑은
다만 상대 앞에서
자신의 가장 약하고
수치스러운 감정을 노출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
그 곁에 침묵하며 서 있는 것,
대신해 우는 것,
조금씩 속도를 늦춰
걷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듯 하다.
단시간에 빠르게 솟구쳐
상대에게 범람하고
금세 소진되는 열정과 달리,
상대를 손쉽게
이해해버리지 않으려는
배려가 스며있는 거리감은
가늘게 빤짝치는 빛처럼
오래 유지된다.
누군가 전하는
작은 온기 뒤에 자리한
단단한 슬픔을 읽어내고,
관계의 어떤 미세한 균열도
사소하게 바라보지 않는 작가의 힘은
이 세계를
쓸쓸하지만 투명하게 빛나는 곳으로
비춰낸다.
(작가의 말)
나는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고통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이 주는 고통이
얼마나 파괴적인지 몸으로 느꼈으니까.
나쁜 어른, 나쁜 작가가되는 것처럼
쉬운 일이 없다는 생각을 종종한다.
쉽게 말고 어렵게,
편하게 말고 불편하게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과정에서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을 느끼고 싶다.
그럴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사람이
될 수 있기를.
허공을 걷는 기분이 들 때도,
뜬눈으로 누워
잠들지 못했던 밤에도
나는 늘 이 글들에 붙들려 있었다.
그럴 때면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누군가로 인해 슬퍼하게 되는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마음이
내 곁에 함께 누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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