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시나 소설같은 문학이
그나마 믿고 읽을만 하다.
다른 분야의 책들은
깊이가 얕거나
내용이 부실한 책들이
너무나 많아 실망이 크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씨의 글은
내 독해능력에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
예전에 읽었을 때는
현학적이고 복잡해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이번 책은
좋은 시들을 먼저 소개하고
시에 대한 해설을
짧게 짧게 쓴 글이라 그런지
잘 이해되고 공감되는 글이 많았다.
중간중간 얻은 표현들만으로도
올해의 책 후보가 될 수 있을 정도다.
다시 한번 느끼는 것이지만
작가들은
확실히 예민한 감수성이 있기에
그 시대의 아픔이나
사람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먼저 세부적으로 느끼는 것 같다.
이런 예술가들 덕분에
내가 좀 더 악해지지 않고
조금 더 따뜻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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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
(최승자 시인)
인생은,
소음과 분노가 가득하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는,
백치가 들려주는 이야기
(맥베스)
그대를 여름날에 견주어볼까요?
그대가 더 사랑스럽고
온화하지요.
(셰익스피어, 소네트)
그는 나의 동쪽이고 서쪽이며
남쪽이고 북쪽이었다.
나의 평일의 생활이자
일요일의 휴식이었고,
나의 정오, 나의 자정, 나의 대화,
나의 노래였다.
우리 사랑이 영원할 줄 알았으나,
내가 틀렸다.
별들은 이제 필요없다,
모두 다 꺼버려라.
달을 싸버리고 해를 철거해라.
바다를 쏟아버리고 숲을 쓸어버려라.
이제는 그 무엇도 아무소용 없으리니.
(W.H.오든, 장례식 블루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만이 아니라
그와의 관계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탄생하는
나의 분인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나는 당신과 함께 있을 때의 내가
가장 마음에 든다.
그런 나로 살 수 있게 해주는 당신을
나는 사랑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이
왜 그토록 고통스러운지도
이해할 수 있다.
그를 잃는다는 것은
그를 통해 생성된 나의 분인까지
잃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그 사람과만 가능했던 관계도 끝난다.
다시는 그를 볼 수 없다는 것은
다시는 그 때의 나로
살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고통과 환멸만을 안기는
다른 관계들 속의 나를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당신과 함께 있을 때의 내가
나를 버텨주기 때문이었다.
자신감이 좀 붙으면
예전에 두려워하던 이가
귀찮아지는 때가 오는 것이다.
그 무렵이 가장 바쁜 때다.
그러나 그것은
잘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헤매고 있는 것이다.
당사자만 그것을 모른다.
한 대상에게 불현듯
마음을 뺏기게 되는 드문 사건이
한 사람을 불가역적으로
바꿔 놓는다.
나는 이 변화가
긍정적인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우리로 하여금
어떤 탁월함을 갖게 하는
변화일 수 있다고 말이다.
자꾸만 나를 혐오하게 만드는
세계 속에서,
우리는 누군가를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하면서,
이 세계와 맞서고 있다.
타자라는 존재의 의미를 모르고
그의 다름을 견디지 못하며
그것과 대면해야 할 상황을
피하는 주체다.
타자는 내 성공을 확인할 때나 필요한
납작하고 투명한 거울에 불과하다.
책장을 넘기다
손을 베인 미인은
아픈데 가렵다고 말했고
나는 가렵고 아프겠다고 말했다
(박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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