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문장의 호흡이 짧은 편이고
단편만 읽었던 터라
과연 장편소설이 가능할까 싶었는데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만의 색을 유지하며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장편소설은 읽다보면
어느 부분에선가는
조금 지루해지기 마련인데
최은영 작가의 장편은
글을 아껴가면서 읽어야겠다는
그런 느낌이 들 정도로
끝까지 좋았다.
그냥 지나칠뻔 했던
최은영 작가의 글을
제대로 읽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행복하다.
이런 섬세하고 감성적인 글을
이렇게 차분하게
써내려 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말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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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라는 것이
꺼내 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어떤 말은 듣는 순간
영원히 잊히지 않으리라는 걸 알게 한다.
그녀를 보며 그는
그 순간이
순간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이상한 직감이었다.
세상 어느 누구도
나만큼
나를 잔인하게 대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쉬웠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용인하는 일이.
인내심 강한 성격이
내 장점이라고 생각했었다.
인내심 덕분에
내 능력보다도 더 많이
성취할 수 있었으니까.
왜 내 한계를 넘어서면서까지
인내하려고 했을까.
나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언제부터였을까,
삶이 누려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수행해야 할 일더미처럼 느껴진 것은.
삶이 천장까지 쌓인
어렵고 재미없는 문제집을
하나하나 풀어나가고,
오답노트를 만들고,
시험을 치고,
점수를 받고,
다음 단계로 가는
서바이벌 게임으로 느껴진 것은.
나는 내 존재를 증명하지 않고
사는 법을 몰랐다.
어떤 성취로
증명되지 않는 나는
무가치한 쓰레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 믿음은 나를 절망하게 했고
그래서 과도하게 노력하게 만들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의미와 가치가 있는 사람들은
자기 존재를 증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애초에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타인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이
내게는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을
돕는 것은 쉬웠다.
내가 돕기 어려운 일을
돕는 것도 할 만했다.
하지만 나를 도와달라고
손을 내미는 일은
내게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무리 힘들어도
다른 사람에게 징징대고 싶지 않았고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으니까.
비가시권의 우주가 얼마나 큰지,
어던 모습일지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한 사람의 삶 안에도
측량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