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즐거움

구의 증명

>>>>> 2024. 3. 28. 16:14

 


최은영 작가의 글을 읽은 후
어떤 소설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상황이
오래 지속되었다.

이번에도 큰 기대없이
책을 골랐는데, 의외로 괜찮다.

최은영 작가처럼
섬세하게 감정을 묘사하는 글을 아니지만
특유의 짧은 문장들을 이어가며
충분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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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바라보다 죽고 싶었다.
너는 알까?
내가 말하지 않았으니 모를까?
네가 모른다면
나는 너무 서럽다.
죽음보다 서럽다.
너를 보지 못하고
너를 생각하다 나는 죽었다.

이런저런 생활의 지혜 같은 것은
기가 막히게 잘 알면서도,
자기 삶을 관통하는
아주 결정적인 사실은 모른 채로,
때로는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채로도
우리는 그럭저럭 살았던 것이다.

무언가를 알기 위해서
대답이나 설명보다
시간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고.
더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데
지금 이해할 수 없다고.
묻고 또 물어봤자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모르는 건 죄가 아닌데
기다리지 못하는 건
죄가 되기도 한다고.

괴롭다는 것은
몸이나 마음이 편하지 않고
고통스럽다는 뜻이다.
괴로움 없는 사랑은 없다.

너 왜 여기 있어?
넌 왜 여기 있어?
서로에게 물었다.
그 질문에는
의문보다 반가움이 더 짙게 묻어 있었다.
여기에 마침 네가 있어
말을 걸 수 있게 되었으니
설레고도 기뻐하는 마음이.

죽으면 알 수 있을까 싶었다.
살아서는 답을 내리지 못한 것들.
죽으면 자연스레 알게 되지 않을까.
그런데 모르겠다.
살아서 몰랐던 건 죽어서도 모른다.
차이가 있다면,
죽은 뒤에는
모른다고 괴로워하지 않는다는 것 뿐.
모르는 것은 모르는 대로 두게 된다.
그것 자체로 완성.

내 생각을 하지 않는가보다.
내 생각을 하지 않고 자나보다.
잠이 잘 오는가보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잘 자는게
다행스럽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했다.
나는 내 마음을 똑바로 알 수 없었다.
너라면 말해줄 수 있을텐데.
자기 마음을 얘기하는 방법으로
내 마음을 말해줄텐데.

기억이 나의 미래.
기억은 너.
너는 나의 미래.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상대를 끝없이 기다린다는 뜻일까.

우리는 사귄다는 단어를 채우고도
그 단어가 보이지 않을 만큼
넘쳐흐르는 관계였다.

너와 나는 죽을 때까지 함께하겠네.
함꼐 있지 않더라도 함께하겠네.
그것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다만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사랑에 가장 가까운 감정.
우리 몸에도 마음에도
그것이 들러붙어 있었고
그것은 죽어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었다.

걱정하는 마음,
그 마음이 점점 커져서,
내가 내 상처를 겁내는 마음을 가려버렸다.
불행이
또 다른 불행을 가려버리듯.

그땐 내게 그런 여유가 없었다.
타인의 말을 구기거나 접지 않고,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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