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 작가를 이제서야 발견하다니
지난 10여년 넘게
최진영 작가를 모르고 살아온 시간들이
뭐랄까
조금 말이 안된다고 느껴졌다.
이렇게 공감이 가는 글을 두고
그냥 살아왔다는 말이야? 이런 생각.
한편으로는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이런 상황, 이런 모습으로
최진영 작가를 만났기 때문에
이런 감동을 느낄 수 있지 않았겠나 하는.
최진영 작가는
아직 한마디로 이야기 하기는 어렵지만
죽음과 사랑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생각하는 사람인 것 같다.
죽음을 생각하면
사실 아무 것도 아닌 인간의 삶에서
과연 무엇이 의미가 있고 중요하겠는가?
그것에 대한 유일한 답을
최진영 작가는
아마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모르겠다, 분명하지는 않다.
하지만
한 사람의 생각과
그 생각을 정확히 표현해 내는 그 사람의 글이,
그 문장들이
이렇게나 마음을 흔들고
정신없이 휘저어 놓을 수 있다니...
그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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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성장을 멈추지 않았다.
너의 꽃과 나의 꽃을 구분할 수 없을 만큼
가까워 지고 싶었다.
뿌리째 뽑혔지만 아직 죽지 않았다.
그대로 두면 서서히 시들어 죽을 테지만
그 시한은 알 수 없다.
사람의 탄생이란,
어쩌면, 뿌리째 뽑히는 것.
사랑의 시작 또한,
어쩌면, 뿌리째 뽑히는 것.
우주에서 보면
인류는 해변의 모래알보다도 작은 행성에서
홀로 존재하다 홀로 사라질 것이다.
인류가 잠시나마 존재했다는 사실을
기억해 줄 이는 없다.
영원한 건 오늘 뿐이야.
세상은 언제나 지금으로 가득해.
나는 그와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항상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먼저 떠올랐다.
원망하지 않는 것, 후회하지 않는 것,
기대하지 않는 것, 미워하지 않는 것.
어떤 사랑은
끝난 뒤에야 사랑이 아니었음을 안다.
어떤 사랑은
끝이 없어서
사랑이란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어떤 사랑은
너무 멀리 있어 끝이 없다.
어떤 사랑은
너무 가까이 있어 시작이 없다.
인간만이 목적이나 의미를 생각하고
덫에 걸린다.
굴레에 갇힌다.
고통을 느끼고 죄책감에 빠지며
괴로워한다.
모두 자기만의 삶을 산다.
상대의 삶이 어떤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도 다들 너무 쉽게 판단하지.
불행할 거라고. 행복할 거라고.
부족한 게 뭐냐고.
부족한 것 투성이라고.
살아도 귀신처럼 사는 사람이 있고
죽어서도 우리 곁에 있는 사람이 있다.
살아서 숨쉬고 활동하는 힘이
사람의 세상에서는 중요하겠지만,
그 세상을 만들고 품은 우주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그녀 안에는 삶에 대한 경멸이 숨어 있었다.
그것이 못처럼 튀어나와
자기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을
다치게 할까 봐,
간신히, 절실히,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이분법으로 나누면 설명하기 편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더 많다.
그렇게 뒤섞인 존재가, 사이가, 현상이,
모호한 상태가 훨씬 많다.
누군가에게는 그녀 또한
죽음이 덜 억울할 사람,
누군가를 위해서 대신 죽어야 할 사람,
죽어도 상관없는 사람으로 보일테니까.
그녀는 타인의 삶과 죽음에 대한
판단을 멈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