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있는 피리 846

단 한 사람

최진영 작가를 이제서야 발견하다니 지난 10여년 넘게 최진영 작가를 모르고 살아온 시간들이 뭐랄까 조금 말이 안된다고 느껴졌다. 이렇게 공감이 가는 글을 두고 그냥 살아왔다는 말이야? 이런 생각. 한편으로는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이런 상황, 이런 모습으로 최진영 작가를 만났기 때문에 이런 감동을 느낄 수 있지 않았겠나 하는. 최진영 작가는 아직 한마디로 이야기 하기는 어렵지만 죽음과 사랑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생각하는 사람인 것 같다. 죽음을 생각하면 사실 아무 것도 아닌 인간의 삶에서 과연 무엇이 의미가 있고 중요하겠는가? 그것에 대한 유일한 답을 최진영 작가는 아마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모르겠다, 분명하지는 않다. 하지만 한 사람의 생각과 그 생각을 정확히 표현해..

읽는 즐거움 2024.04.01

원도

최진영 작가의 초기작이다. 감정이 약간은 넘쳐 흘러 다소 거친 느낌이 없지 않지만 지금의 최진영 작가가 어떤 혼돈을 거쳐 이런 글을 쓰게 되었는지 보여주는 소중한 자료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절판 되었던 이 책이 그렇게 고가로 거래 되었던 거겠지 싶었다. 초기작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순수함 그런 열정 그런 것들... 마음에 와서 박혔던 문장들을 하나씩 정리해 보니 최진영 작가의 마음이 어렴풋하게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 타인은 나를 풍요롭게 하는 만큼 해친다. 해칠 수 밖에 없다. 돌려주세요. 내게서 뺐어 간 그것. 당신이지만 나이기도 했던 그것. 날 살게 하고 혼자이게도 했던 그것. 하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하고, 걱정하는 줄..

읽는 즐거움 2024.04.01

가타카

거의 30년 전에 개봉한 영화가 이렇게 현대적이라니... 인류가 발전하고 있는 것이 맞나? 착각이었나? 그런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하긴 수천년전 만들어진 종교가 아직도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고 많게는 수백년전 만들어진 클래식 음악과 미술이 역시나 감동을 주고 있는 것을 보면 인류가 발전하고 있다는 것은 환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30년 전에 상상했던 미래가 아직까지 실현되지 않은 것을 보면 인간의 상상력은 참으로 대단한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참 대책 없기도 하다. 그래서 흥미로운 것이고... 신이 만든 인간과 인간이 만든 인간 어찌보면 인간이 신을 이길 수는 없으므로 자연의 섭리에 따라 신이 만든 인간이 인간이 만든 인간보다 더 위대해질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이 ..

보는 즐거움 2024.04.01

구의 증명

최은영 작가의 글을 읽은 후 어떤 소설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상황이 오래 지속되었다. 이번에도 큰 기대없이 책을 골랐는데, 의외로 괜찮다. 최은영 작가처럼 섬세하게 감정을 묘사하는 글을 아니지만 특유의 짧은 문장들을 이어가며 충분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 너를 바라보다 죽고 싶었다. 너는 알까? 내가 말하지 않았으니 모를까? 네가 모른다면 나는 너무 서럽다. 죽음보다 서럽다. 너를 보지 못하고 너를 생각하다 나는 죽었다. 이런저런 생활의 지혜 같은 것은 기가 막히게 잘 알면서도, 자기 삶을 관통하는 아주 결정적인 사실은 모른 채로, 때로는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채로도 우리는 그럭저럭 살았던 것이다. 무언가를 알기 위해서 대답..

읽는 즐거움 2024.03.28

시의적절 3월호 - 이듬해 봄

시인들이 매월 돌아가며 책을 내는 시의적절 시리즈 3월호다. 1, 2월호를 다 읽었다는 약간의 관성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제목이 참 예뻐서 읽게 되었다. 이듬해 봄이라 생각하기만 해도 따뜻해지고 뭔가 발음이 비슷해서 그런지 무해한 느낌도 들고 그렇다. 시인이 쓴 글들은 참 감성적이다. 어찌되었건 읽는 내내 충전되는 느낌이 들고 가끔 너무나 괜찮은 글도 만날 수 있다. ------------------------------------- 남을 이해할수록 나를 용서하기 어려운 날이 앞에 창창하게 놓여 있었다. 모욕감은 너무 나쁜 것이라 되돌려줄 수 조차 없다고 느껴. 그런데 어떻게 그런 걸 줄 수가 있지. 심지어 나는 마음을 줬는데, 왜 그러는 거지, 생각을 멈출 수 없다. 어떤 기념일은 몇 번을 반복한들 ..

읽는 즐거움 2024.03.26

리플리

영화 자체로도 충분히 완성도 높고 전개도 흥미진진했지만 원작 소설로 봤다면 뭔가 더 소름 끼치고 더 몰입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사람의 감정이나 상황에 대한 상세한 묘사는 아무래도 영화보다는 소설이라는 형식이 유리할테니까 주변 사람들을 속이고 그 속였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또 속이고 급기야 사람을 죽이고 거짓말에 거짓말을 계속해서 쌓아간다는, 그러면서도 몇 번의 발각될 위기를 아슬아슬하게 넘기는 그런 장면들이 영화의 핵심을 이루고 있지만 인간들이 만들어 내는 복잡하고 지저분한 현실과 대비되어 그런지 이 영화의 배경인 이탈리아 나폴리 바닷가, 로마, 베네치아의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런지 그런 심각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전체적으로 따뜻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특히나 베네치아..

보는 즐거움 2024.03.25

계절의 경계

이런 꽃 사진은 올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올려야 할 이유가 생겨서 부득이 올리게 되었다. 최근 몇일 동안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날들이 반복되다가 오늘 갑자기 확 풀려버린 날씨에 어제는 분명 피지 않았던 진달래가 오늘 보니 피어 버렸다. 이 모습을 보고 진달래가 피었다 라며 단순히 표현할 수 있는 것을 계절의 경계를 보았다 라고 멋지게 이야기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표현은 마치 시와 같고 음악 같고 춤 같기도 해서 이런 표현을 접하게 되면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게 되고 보다 더 밀도 있게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그게 너무 고마워서 꽃 사진을 올리게 된 것이다.

일상의 기록 2024.03.25

이 연애에 이름을 붙인다면

봄이다.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기운이 있지만 봄 기운을 이겨낼 정도는 아니다. 봄이라는 계절에 잘 어울리는 시집이다. 사랑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시인들의 시를 모아 놓았다. -------------------------------------- (사랑에 빠진 자전거 타고 너에게 가기) 너에게 가는 길이다 무엇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모두 무언가 되고 있는 중인 아침 사랑에 빠져 정말 좋았던 건 세상 모든 순간들이 무언가 되고 있는 중이었다는 것 (어린 우리가) 노래를 들을 때 우리는 한명인것 같다. (매화, 풀리다) 모든 나무에게 꽃이 그렇듯 함부로 피는 사랑이란 없다 잘못 매듭지어진 시간이 있을 뿐 (낮게 부는 바람) 그건 정말이지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잠들도록 한 사람이 아무도 모르게 잠들 수 있도록 이..

읽는 즐거움 2024.03.18

조커

제목이 조커니까 당연히 배트맨이 나오는 영화인 줄 알고 봤는데 배트맨은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다행이다. 나는 슈퍼 히어로 영화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뻔한 스토리에 뻔한 결말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는 아주아주 괜찮았다. 처음부터 우울한 분위기에 끝까지 우울하지만 일단 재미있고 내용도 끝까지 흥미진진하고 음악은 장면장면에 맞게 적절하며 영상도 멋지고 조커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도 충분한 몰입감을 준다. 하지만 의외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여운이 남는 부분은 TV 출연을 위해 마지막으로 분장한 조커의 모습, 빨강 재킷에 노랑 셔츠 그리고 계단에서 춤을 추는 그 장면이었다. 아 이거 왜 아름답지? 정신질환자에 살인자에 그리고 또 다른 살인을 하기 위해 분장을 한 사람의 춤인데 나는 이 장면..

보는 즐거움 2024.03.18

사자왕 형제의 모험

어른이 되어 읽는 동화는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 동화책은 물론 어린이들을 위해 쉽게 쓰여져 있지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그것이 동화라고 해서 결코 가볍지가 않다. 하긴 새싹과도 같은 어린이들에게 아무 메시지나 전달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나이가 들어가며 쌓인 경험과 연륜으로 동화가 전하는 그 메시지를 보다 깊이있고 풍부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어른이 되어 읽는 동화의 매력인 것 같다. 이 사자왕 형제의 모험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린이들을 위해 친절하게 쓰여진 글이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 아름다운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고 그런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이었다. 한강 작가가 덧붙인 후기에 이런 멋진 글이 있다. ----------------------------------- 어떻게 그들..

읽는 즐거움 2024.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