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있는 피리 846

안녕 주정뱅이

뭔가 주정뱅이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는 것 같은 책 제목이 마음에 들어 예전에 사두었다가 (아마 2년 전쯤인 것 같은데)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책도 사람의 인연과 비슷해서 어떤 책이든 읽혀질 때가 있는 것 같다. 그 때가 맞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이 책보다 먼저 읽었던 단편집, 은 한동안 최은영 작가의 문체에 푹 빠져있었던 탓인지 영 별로였는데 이번 단편집은 나쁘지 않다. 각 단편마다 술 마시는 이야기들이 나와 그런건지 무슨 영향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번 단편의 정여선씨 글은 참 좋다. 사람의 감정에 대한 묘사도 사람사이의 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안타까운 상황에 대한 서술도 참 적절하다. ----------------------------------..

읽는 즐거움 2024.02.24

시의적절 2월호 - 선릉과 정릉

시인들이 매달 한권씩 책을 펴내는 프로젝트, 시의적절 2월호, 제목은 선릉과 정릉 책 한권 읽는 동안 크게 다가오는 문장은 없어도 무난하게 보기는 편했는데 뭔가 이 밋밋한 느낌은 지울 수 없다. 다만 이번 호 시인은 음악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런가, 별도 리스트를 정리해 가면서 까지 자기가 고른 음악과 노래들을 추천해 준다. 별 생각없이 출근길 아침에 하나 듣게 되었는데 와! 의외로 괜찮다. 세번 연속으로 들을 정도로 시인의 감성으로 선곡한 노래라 그런지 노래가 마치 시처럼 느껴진다. 그래! 이런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것 또한 독서의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 너는 내가 (생각의 여름) 너는 내가 너의 하늘 아래 나를 사랑하..

읽는 즐거움 2024.02.22

시의적절 1월호 - 읽을, 거리

요즘에는 워낙 읽을만한 책이 없어 시나 소설을 주로 읽고 있다. 나 자신도 모르게 그냥 지나치게 되는 감정들이나 일상의 어떤 장면들을 포착해 내는 시인이나 소설가들의 모습에 감동하고 그들의 알려주는 것들에 공감하고 있는 요즘이다. 그런데 이런 문학중심 책 읽기의 큰 단점이 있으니 이제 깊이가 없거나 고민이 없거나 독창적이지 않은 가벼운 글이나 말들을, 그런 사람들을 점점 더 참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시를 전문으로 발간하는 출판사에서 열두명의 시인에게 한권씩 책을 쓰게 하고 매달 그 한권을 발행하는 프로젝트의 첫번째, 1월에 대한 책이다. 첫번째 시인은 김민정씨이고 제목은 읽을, 거리 처음에는 밋밋해서 중고서점으로 보내야 하나 했는데 읽다보니 이만한 책도 없는 것 같고 기획도 신선해서 올해 ..

읽는 즐거움 2024.02.21

인생은 너무도 느리고 희망은 너무도 난폭해

천재 작가도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는 일반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생은 너무도 느리고 희망은 너무도 난폭해 이 말로 시작하는 편지는 아마도 사강이 평소 좋아하던 드라이브를 하다 사고가 난 다음 쓴 편지로 보인다. 답답한 고통의 상황에 처한 작가가 저런 문장을 쓴 것인데, 고통이 일상다반사인 우리 인생에도 바로 적용가능하다는 점에서 공감되는 명문장이 아닐까 싶다. 고통의 상황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고 희망이 보이지 않기에 보이지 않는 희망을 난폭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

읽는 즐거움 2024.02.21

쇼코의 미소

최은영 작가의 초기작이다. 초기작에서 느껴지는 풋풋함, 그리고 혹시나 작품들이 인정받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하는 두려움, 그리고 결국 그 두려움을 이겨내고 책을 출간하면서 느꼈을 그 막막했었을 마음, 그런 감정들이 각각 조금씩 담겨있는 그런 소설집이었다. 최은영 작가는 걱정을 많이 했겠지만 이 책은 초기작이라고 하기 조금 민망할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이미 갖추고 있다. 얼마나 힘든 시간을 겪어 여기까지 왔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최은영 작가만의 발견해내는 사람들의 섬세한 감정이나 그 감정에 대한 표현이 탁월하다. 다른 소설들에서 느꼈던 부담스럽거나 난해한 느낌이 전혀 없었다. 이제 얼마나 더 기다려야 최은영 작가의 글을 또 읽을 수 있을지 벌써부터 기다림이 길게 느껴지고 그만큼 이 책들을 너무 빨리 읽어버..

읽는 즐거움 2024.02.20

행복을 찾아서

중학교 고등학교 때 너무 과도하고 지나치게 열심히 공부했던 나는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중요한 결심을 하게 된다. 앞으로 뭐든지 너무 열심히 하지는 말아야지. 그래서 사실 책을 좋아하지만 자기계발서 같은 책은 어지간하면 절대 읽지 않는다. 자꾸 열심히 살라고 강요하니까. 이 영화도 실은 보는 내내 마음이 좀 불편했다. 열심히 살면 좋아질거라고 달라질거라고 은근히 강요하는 것 같아서. 그런데 아주 의외의 소품에서 감동을 받았다. 영화 초반부터 중반까지 주인공이 팔려고 들고 다니는 큰 상자같은 의료기기가 그것이다. 지금 기억으로는 아마 그 의료기기 한대를 팔면 한달 생활비가 나오는 것 같던데, 그 의료기기를 자기 몸의 일부처럼 소중히 다루고 어딜가든 항상 들고 다니는 모습이 약간 슬프고 아프게 느껴졌다. 절대..

보는 즐거움 2024.02.20

비포 선라이즈

재잘재잘 조잘조잘 영화를 보는 내내 끊임없이 이야기를 주고 받지만 시간의 제약이 분명하게 있는 연인들에게는 그런 방법 밖에는 없을 것 같다. 서로에 대해 알고 싶기도 하면서 동시에 서로에게 호감도 보여줘야 하는데 달리 방법이 뭐가 있을까 싶은거다. 그렇게 서로에 대해 알고 싶어서 서로에게 호감을 주고 싶어서 하는 대화이다 보니 대화 자체가 참 부드럽고 사랑스럽다. 영화 내내 대화를 하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고 아름답게 들리는 이유인 것 같다. 1995년 개봉이니 거의 30년전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배경이 유럽이라 그런지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뤄서 그런지 그렇게 오래된 느낌이 나지 않고 대화의 내용도 상당히 공감이 된다. 그리고 또 하나의 궁금증! 어떤 사람에게 첫 눈에 반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이 영화 ..

보는 즐거움 2024.02.20

싱글라이더

인생이 계획한 대로 흘러 가는가? 이제는 안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학교에 다니면서 그리고 회사에 들어와서도 늘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실행하며 그런 일상이 계속 반복되면서 언제부터인가 계획대로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온 것 같다. 실제로 어떤 것들은 계획대로 되는 듯 그렇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만히 돌이켜 보면 인생의 항로를 바꿨던 중요한 사건들은 계획과는 다른 아주 우연한 것들이 많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든다. 계획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이 일면 안타까운 일일 수도 있지만 계획을 벗어난 우연에 의해 삶이 다채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삶의 흥미진진한 재미일수도 있다는 것. 이 영화는 섬세한 감정연기와 그 감정을 절절히 느끼게 해주는 음악과 영상 등 몰입..

보는 즐거움 2024.02.20

인셉션

사람들은 어떤 일이 일어나면 자연스럽게 그 일의 원인이나 이유를 찾는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된거지? 내 마음이 왜 이런거지? 분명히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생각하고 그 이유를 알아내야만 편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이유를 찾고 나면 뭔가의 불확실성이 사라지고 그 원인과 이유에 모든 사건의 책임을 전가하고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는 것일까? 하지만 살아보면 알게 된다. 이유가 없이 일어나는 일들이 생각보다 아주 많고 이유 없이 일어나는 감정 또한 너무나 많고, 또 너무도 많이 주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더 이상 내 생각과 내 감정을 내가 의식한 대로 조절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게 되었다. 내가 어쩌지 못한 사이에 내 마음 깊숙히 자리잡은 무의식이 내 생각..

보는 즐거움 2024.02.14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당장 내일이나 모레 또는 몇일 이내에 죽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면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 영화를 보고 문득 이 질문이 떠올랐다. 이 영화에는 분명 다양한 메시지들이 담겨 있지만 지금 나에게 느껴지는 가장 강한 메시지는 바로 이 질문이다. 먼저 가장 해서는 안될 것들은, 다시 말해 이것을 하면 시간이 너무 아까울 것들은, 이미 지나간 과거에 대한 후회, 혼자서 하는 반성이나 자책, 사실 내 인생에 있어 별로 중요치 않은 사람들에 대한 미움, 이런 것들이 있을 것 같다. 그런 식으로 해서는 안될 일들은 하나씩 지운 다음 그 다음 무엇을 해야 하지? 일단 그동안 보고 싶지만 미뤄두었던 내 주변의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서 보고 싶다.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이라던지 짙고 푸른 바다와 흰 파도라던지 고요한 숲..

보는 즐거움 2024.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