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있는 피리 846

인사는 잠깐인데 우리는 오래 헤어진다

이런 책이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이 책은 기념으로라도 소장해야 한다. --------------------- 철 지난 감정은 겨울에 듣는 여름의 노래 이제는 반듯하게 접어 서랍 속으로 정리해야 하는 반팔 티셔츠 같은 것 시간이 알아서 해결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날도 있었다. 봄이 오면 꽃 보러 가자고 했던 거. 산책하자고 약속했던 거. 두고두고 생각이 나겠지. 사랑했던 만큼 생각이 나겠지. 시도 때도 없이 떠올라 괴로운 거. 덜컥 울음이 터지는 거. 시간도 그다지 해결해주진 못하겠지. 이런 일 앞에선 시간도 무용지물이 된다. 이 끔찍한 계절을 어떻게 보내줄 수 있을까 참 많이도 생각을 했지만 계절이라는 것은 내가 보내줄 수 있는 게 아니라 그저 지나가는 것이다. 사람을 너무 많이 잊어 본 ..

읽는 즐거움 2024.03.11

사도

나는 이 영화가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아주 진지하게 보여준 영화라고 생각한다. 역시나 배우들의 연기와 감독의 연출이 정확히 맞아떨어져야 이런 감정 전달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인간관계 참 쉽지가 않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나와 타인 각자의 상황과 그리고 그 상황이 만들어 내는 다양한 변수들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여기에 더해 자기자신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는 잠재된 무의식이 이끄는 대로 진행되기도 하며 한번 좋은 관계가 긍정적 강화작용을 통해 계속해서 좋아질 수도 있는 반면 바로 그 좋았던 관계를 포함해 한번 무너진 관계는 무엇을 해도 되돌리기 힘든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우리는 그런 인간관계의 희극과 비극을 번갈아 경험하며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런 것들을 보여준..

보는 즐거움 2024.03.11

시간 여행자의 아내

시간 여행자의 아내 시간여행이라는 상상, 배우들의 연기,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 영화로서도 충분히 좋았지만 이 영화는 책으로 읽었어도 또 다른 차원으로 좋았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드는 작품이었다. 우리는 통상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것이 바램일지 아니면 의지일지 모르겠으나 그 사람이 나와 영원히 함께 할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그 사람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사라지고 그렇게 또 한없이 기다리다가 갑자기 나타나 만날 수 있다면 그 마음이 과연 어떨까? 훨씬 더 애틋하고 더 사랑스럽지 않을까? 이 영화는 그런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감정을 아름답게 잘 보여주는 예쁜 영화다. 언제 떠날지 또 언제 갑자기 만날지 모르기 때문에 사랑하는 그 사람과 같이있는 순간이 더욱 소중하고 기다리..

보는 즐거움 2024.03.11

철학의 위안

알랭 드 보통의 깊이 있는 철학적 지식과 그 지식을 위트있게 풀어내는 멋진 문장에 빠져 한참 동안 여러 저작들을 읽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첫 작품이었던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와 불안을 넘어서는 책은 아직 보지 못했다. 이번 책은 다행히 그 정도로까지 실망스럽지는 않았지만 최고의 책이라고는 할 수 없는 그런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번 책을 통해서는 에피쿠로스 철학의 핵심적 내용과 몽테뉴라는 철학자를 새롭게 알게 된 것이 큰 소득이었다. 알랭 드 보통은 확실히 철학을 쉬운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천부적 재능이 분명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쓰여진 책도 프랑스어 번역이 어려운 탓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도 많았다. ----------------------------------------- (소..

읽는 즐거움 2024.03.04

그해 여름

최근에 알게 된 것이지만, 영화에는 스토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연출, 영상, 음악, 연기 그리고 주제의식 또는 메시지 이런 것들이 모여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답고 감동적인 영화가 완성된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영화 음악의 중요성을 많이 느낀다. 어떤 장면에서 어떤 음악이 함께 하느냐에 따라 몰입감이 완전히 달라지는 느낌이 든다. 사실 그해 여름 이 영화의 스토리는 특별하지는 않다. 흔히 있을 수도 있는 이야기랄까, 그런데 그 스토리를 아름다운 영상과 잔잔한 배경음악,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매우 몰입하게 되는 아름답고 슬픈 영화로 만들어냈다. 이쯤되면 정말 영화는 종합예술이라 부르는 게 맞는 것 같다. 그해 여름 그 짧은 기간에 시작된 사랑이었지만 그리움은 너무나 길었고 갑작스러운 이별은 충분히 슬펐다. ..

보는 즐거움 2024.03.04

비바리움

서로 사랑하는 젊은 연인이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결혼 후 살 집을 구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없다. 일상적인 풍경이랄까? 하지만 여기까지가 이 영화에서 그리고 있는 인생의 밝은 모습 전부다. 그 이후 이 연인에게는 지옥 같은 현실이 펼쳐진다. 어떻게 보면 사람의 인생을, 특히 결혼 후 인생에 대해 아주 극단적으로 설정한 것인데,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반복되는 무의미한 일상에 갇힌 상태에서 두 사람은 나름의 방법으로 의미를 찾으며 현실을 극복해 보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긍정적인 결론 따위 보여주지 않는다. 여주인공 젬마는 아이를 키우면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에 갑자기 배달된 아이를 키우게 되고 가끔은 엄마가 된 것 같은 느낌도 가지게 되지만 열심히 키운 그 아이에게, 당신은 나를 ..

보는 즐거움 2024.03.04

아주 오래된 시에서 찾아낸 삶의 해답

시 읽기의 즐거움을 알게 된 요즘 오래된 시에서 깊은 의미와 재미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읽어본 책인데 의외로 내용은 그렇게 깊지는 않다. 다만, 몇가지 좋은 시구는 발견했다. 조관우의 라는 노래로 처음 들었던 가사인데, 이게 거의 500년전 세종대왕 시절 한 선비가 고향에 두고 온 첫사랑 여인을 생각하며 쓴 시였다니, 참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이렇게 역사적이고 이렇게 변함없는 것이라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봄이 오고 곧 꽃이 만발하는 계절이 되면 이 시구가 더욱 자주 생각날 것 같고, 그때 보는 꽃들은 지금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질 것 같다. -----------------------------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름다운 꽃이여 꽃이여 이렇게 좋은 날에 ..

읽는 즐거움 2024.02.26

녹터널 애니멀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분명 내용으로 봐서는 그런 영화 아닌 것 같은데 영화를 보는 내내 보고 나서도 계속해서 이 질문이 수 없이 떠올랐다. 왜 그랬을까? 다소 충격적인 영화 도입부 무희들의 춤 장면이나 텍사스 황야의 압도적인 풍경, 좀 그렇기는 하지만 주인공 아내와 딸의 시신 모습이라던지 중간중간 그런 예술적인 요소들 때문에 나도 모르게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 같기도 하고 영화 전체적으로도 사회적인 그리고 물질적인 성공을 위해 살아온 수잔이 결국은 전 남편 에드워드의 소설을 읽고 예술적인 그리고 문학적인 아름다움을 다시 절실하게 그리워한다는 설정 역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해 끝까지 생각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영화라는 새로운 장르가 나타나 그 안에서 기존의 ..

보는 즐거움 2024.02.26

완벽한 타인

우리는 다른 사람, 즉 타인에 대해 어디까지 알 수 있을까? 솔직히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인지도 정확히 잘 모르는데 다른 사람을 제대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어떻게 보면 심각한 착각일 수 있다. 최대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을 뿐 완벽히 알 수는 없는 것, 그것이 다른 사람, 타인이 아닐까 싶다. 그런 부분을 솔직히 인정해야 오해도 갈등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내가 살아오면서 내린 결론이다. 그렇다면 타인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아는 것은 과연 좋은 것인가?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지만 내 생각에는 그 완벽하게 알 수 없는 부분 때문에 그 안에서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가 생기고 그것이 빛이 되고 밤하늘의 별처럼 서로서로 빛나는 것, 그런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 ..

보는 즐거움 2024.02.26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복잡한 감정이 들었지만 난해하지는 않았고 우울함으로 가득했지만 이상한 위로가 되었다.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는 것을 보고 알았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그때 알았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그때 처음 아팠네 그러러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난 눈을 떴고 깊은 밤이었고 꿈에 흘린 눈물이 아직 따뜻했네 어두워지기 전에 그 말을 들었다. 어두워질 거라고 더 어두워질 거라고. 죽는다는 건 마침내 사물이 되는 기막힌 일 그게 왜 고통인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어떤 종류의 슬픔은 물기 없이 단단해서, 어떤 칼로도 연마되지 않는 원석과 같다. 사는 일이 거대한 장례실일 뿐이라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읽는 즐거움 2024.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