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있는 피리 846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최근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여러가지 글을 읽다고 최승자 시인을 알게 되었다. 사실 최승자 시인의 시는 한번도 읽어 본 적이 없는데, 그 시인의 에세이라니 좀 생뚱맞기는 하다. 시인이란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혼자서 너무나 아픈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최승자 시인 역시 그런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사람들은 범상치 않은 일이 나타나면 그것이 가치있는 것인가 무가치한 것인가, 유익한 것인가, 해로운 것인가, 선한 것인가 악한 것인가, 무죄인가 유죄인가를 끊임없이 판단하려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도덕은 자기 자신을 존재케 하고 보존케 하는 기존의 가치체계로서 그리고 그 가치체계의 룰과 율로서 비도덕적인 것, 반도덕적인 것, 부도덕한 것에 대하..

읽는 즐거움 2024.02.12

각각의 계절

워낙 평이 좋은 유명한 작가고 그 작가의 괜찮은 책이라고 해서 읽어봤는데 나하고는 코드가 맞지 않는 것 같다. 쉽게 쉽게 읽히고 잘 넘어가는데 뭔가 남는 것이 없고 무엇보다 겪었던 시대상황이 나와 달라서 그런지 공감이 잘 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이번 단편집에서 그나마 괜찮았던 것은 마지막에 실린 기억의 왈츠였다. 언젠가 권여선 작가의 글도 마음에 들어오는 때가 있기를 바래본다. ----------------------------- (하늘 높이 아름답게) 참 고귀하지를 않구나 이 사람들은, 하고 생각했다. 분명 자신도 고귀하다고 할 순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은 고귀하지를, 전혀 고귀하지를 않다고 그녀는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같은 생각을 반복했다. (기억의 왈츠) 과거를 반추하면 할수록 내게..

읽는 즐거움 2024.02.12

오, 윌리엄

최근 최은영 작가의 섬세한 문장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번역문의 특성 상 다 담아내지 못한 한계 때문인지 작가의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받지 못한 느낌이었지만 중간중간 보이는 반짝이는 문장들은 이 소설을 원어로 제대로 읽었더라면 꽤 괜찮았을 것 같았다는 느낌을 준다. 사실 이렇게 선물받은 책은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선물받았다는 자체가 추억이 되므로 그것만으로도 아주 큰 의미가 있다. --------------------------------- 슬픔은 마치 당신이 아주 높은 건물의 유리로 만들어진 긴 외벽을 아무 대책도 없이 미끄러져 내려오는데 당신을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과 같다. 다른 사람의 경험과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람이 살면서 정말로 뭔가를 선택하는 일이 몇번이나 될까? 뭐든..

읽는 즐거움 2024.02.12

밝은 밤

최은영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문장의 호흡이 짧은 편이고 단편만 읽었던 터라 과연 장편소설이 가능할까 싶었는데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만의 색을 유지하며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장편소설은 읽다보면 어느 부분에선가는 조금 지루해지기 마련인데 최은영 작가의 장편은 글을 아껴가면서 읽어야겠다는 그런 느낌이 들 정도로 끝까지 좋았다. 그냥 지나칠뻔 했던 최은영 작가의 글을 제대로 읽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행복하다. 이런 섬세하고 감성적인 글을 이렇게 차분하게 써내려 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말 대단하다. -------------------------------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 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

읽는 즐거움 2024.02.12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문장들

이 책을 읽었던 2017년에는 책에 대한 짧은 감상만 써두고 독후감을 마무리했던 것 같다. 우연히 책장을 정리하다 이 책을 다시 펼쳐보게 되었고, 생각보다 많은 문장에 표시를 해두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17년의 나는 어떤 문장에 감동했었을까, 지금의 나와 다른 마음이었을까, 이런 마음으로 옮겨본다. -------------------------------------- 인생이란 한번 사라지면 두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잔혹함과 아름다움과 찬란함 조차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사람이 무엇을 희구해야만 하는가를 안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

읽는 즐거움 2024.02.12

인생의 역사

요즘은 시나 소설같은 문학이 그나마 믿고 읽을만 하다. 다른 분야의 책들은 깊이가 얕거나 내용이 부실한 책들이 너무나 많아 실망이 크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씨의 글은 내 독해능력에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 예전에 읽었을 때는 현학적이고 복잡해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이번 책은 좋은 시들을 먼저 소개하고 시에 대한 해설을 짧게 짧게 쓴 글이라 그런지 잘 이해되고 공감되는 글이 많았다. 중간중간 얻은 표현들만으로도 올해의 책 후보가 될 수 있을 정도다. 다시 한번 느끼는 것이지만 작가들은 확실히 예민한 감수성이 있기에 그 시대의 아픔이나 사람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먼저 세부적으로 느끼는 것 같다. 이런 예술가들 덕분에 내가 좀 더 악해지지 않고 조금 더 따뜻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읽는 즐거움 2024.02.06

자기결정

저자가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박사까지 공부한 철학자이자 소설가이다. 그런 배경이 있으니 이런 강의를 할 수 있었구나 싶었다. 삶에는 여러가지 방식이 있을 수 있고 한 사람은 하나의 삶 밖에 살 수 없다는 당연한 원칙을 이해하고 나면 어떤 삶이 좋은 삶이다라고 주장하기 어려워진다. 하지만 철학과 문학을 공부하고 이렇게 멋진 글을 남길 수 있고 게다가 내가 유럽에서 가장 좋아하는 도시 하이델베르크에서 오랜 기간 머물며 공부한 이 저자는 멋진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매우 부럽다. --------------------------------------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장면 중 하나는 책을 들고 말없이 소파에 앉아 아주 가끔씩 책장을 넘기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책 속에서 ..

읽는 즐거움 2024.02.05

화양연화

화양연화 이 영화 제목은 예전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제서야 보게 되었다. 영화를 다 본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런 영화를 왜 이제서야 보게 된 것인가하는 아쉬움이었다. 영화가 다 같은 영화가 아니라 어떤 영화는 시가 되기도 하고 그림이 되기도 하고 음악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 영화에 대한 나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 준 그런 영화였다. 분명히 영화라는 형식을 갖추었고 배우도 있고 대사도 있는데 감독이 대체 영화 속에 어떤 장치를 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영화가 마치 그림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모아놓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작품같은 그림들을 여러장 엮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예쁜 그림들 속에서도 주인공들의 섬세한 감정의 흐름과 안타까운 마음들이 절절하게 느껴지고 진정한 사랑은 무엇인..

보는 즐거움 2024.02.05

그린북

그린북 1962년 뉴욕을 중심으로 미국 주요도시들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미국 주요도시들의 풍경도 볼만했고 배우들의 연기도 괜찮았고 중간중간 흘러나오는 클래식 연주와 재즈 음악도 좋았으나 무엇보다 서로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만드는 따뜻한 우정의 모습이 무엇보다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미국 주요도시들을 순회하며 공연하는 것이 주요 설정이고 가는 곳마다 소소한 이슈들이 이어지는 탓인지 시간가는 줄 모르게 아주 편안하고 재미있게 봤다. 크리스마스가 배경이라 그랬는지 다 보고 난 후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 마지막에 두 주인공이 실존 인물이었고 평생 우정을 이어가다가 비슷한 시기에 사망했다는 말이 나오는데 왠지 참 부러운 인생이다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보는 즐거움 2024.02.05

철학자와 늑대

철학자와 늑대 늑대소녀에게 생일선물로 받은 책이다. 언뜻 늑대소녀라고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늑대소녀라는 말이 나쁜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를 불안해하지 말며 순간순간에 집중하라는 말, 한두번 들어본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은 이러한 주장을 매우 다른 배경에서 색다른 관점으로 전달한다. 책을 다 읽는다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대로 나는 늑대가 아니라 영장류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간에 얽매여 순간에 집중하지 못하는 존재지만 조금은 더 순간에 집중할 수 있는 그런 노력은 해보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순간에 집중할 때에만 진정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읽는 즐거움 2024.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