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있는 피리 846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0/11/08 여러가지 감정이 너무 벅차올라 도저히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이제 막 책장을 덮은 지금이 바로 그렇다. 후기를 쓰려고 이런저런 생각으로 한참을 고민했는데 겨우 이렇게 쓸 수 밖에 없었다. 공지영 작가의 글을 대학 신입생 때부터 좋아하기는 했지만 공지영 작가 그 사람 자체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작가의 인간적 매력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원래도 괜찮았던 사람이 여러가지 혹독한 시련과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결국 아름다운 보석이 되었다고나 할까? 섬진강의 반짝반짝 빛나는 윤슬과 같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었다. 그 아름다운 사람이 발산하는 향기가 책 전체에서 은은하게 퍼져나온다. 이런 느낌이 든 책은 은희경 작가의 '새의 선물' 법정 스..

루쉰 독본

2020/11/05 중국 근현대 소설은 왠지 나하고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그 유명한 아Q정전이나 광인일기 같은 작품을 읽어봐도 마찬가지인 걸 보니 이제 포기할 때도 된 것 같다. 읽는 내내 공감도 안되고 몰입도 떨어진다. 반면, 일본 근현대 소설을 대표하는 나쓰메소세키가 나의 인생작가로 등극할 정도이고 보면 나에게는 일본 소설이 훨씬 더 잘 맞는 것 같다. 아무래도 우리나라가 근현대에는 일본문화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은 그런 탓이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루쉰이라는 작가는 분명 뭔가 반짝이는 것이 있었다. 시대의 조류에 휩쓸리지 않는 자기만의 분명한 철학과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고 할까? 어떤 시기이든 시대를 초월한 사람의 향기는 오래도록 널리 퍼져가는 것 같다. ---------------..

장자 제물론

2020/11/01 호접몽 꿈에 나비가 되어 날아다녔는데 꿈을 깨니 다시 내가 되었다. 내가 나비가 되었던 꿈을 꾼 것인가 나비가 내가 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내가 사는 이 현실이 어쩌면 한바탕 꿈일 수도 있다는 주장은 일견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럴듯한 이야기로 들린다. 꿈도 어차피 기억의 작용이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 현실이란 것도 지금 이 순간이 지나가자마자 바로 기억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내 기억의 작용이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꿈과 다를게 뭐가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한바탕 꿈일지도 모르는 아니 진짜 꿈과 유사한 이 하루하루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장자는 여기에 이런 해답을 제시한다. 어차피 꿈인데 좋은 꿈이라면 느긋하게 그 순간을 즐길 것이..

중용 14장

2020/11/01 군자는 자기자리를 바탕으로 행하되 그밖의 것을 구하지 않는다. 부귀에 처해서는 부귀대로 행하고 빈천에 처해서는 빈천대로 행하며 오랑캐 땅에서는 오랑캐대로 행하고 환난에 처해서는 환난을 당한다. 군자는 어디를 가든 그곳에 맞게 처한다. 윗자리에 앉아서는 아랫사람을 업신여기지 않고 아랫자리에 앉아서는 윗사람을 헐뜯지 않으며 자기 자신을 바르게 하고 남한테는 얻고자 하지 않는다. 그래서 원망이 없으니 위로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아래로는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

장자, 위대한 우화

2020/10/30 이런 엄청난 책을 발견하다니! 이 좋은 책을 왜 버리려고 했었는지 모르겠다. 2011년에 나왔던 책이 2016년에 재출간 되었고 그 책을 작년에 그냥 별 생각 없이 구매했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장자니까. 그런데 책을 사놓고도 이상하게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한동안 방치해놨었고 버릴까 말까 고민도 했었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이 책을 다시 읽게 되었고 또 그게 타이밍이 맞았는지 이번에는 너무나 잘 읽히고 너무나 감동적이다. 만날 사람은 언젠가 만나게 되어있고 읽을 책은 언젠가 읽게 되어있는 것인가, 책이 내게로 왔다라는 표현을 다시 한번 제대로 느끼게 해준 책이다. 감사한 일이다. ------------------------ 1장. 소요유 나는 자연과 구분되는 별개의 독립적인 존재가 ..

클래식 수업 - 바흐

2020/10/26 클래식에 문외한이어서 그런지 아직까지도 바흐는 내게 참 낯설고 어렵다. 나중에 혹시라도 피아노를 좀 배우게 되면 그때 좀 알 수 있으려나 (피아노 치기가 버킷리스트임) 하지만 이 책은 바흐에 대해 지금까지 알았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게 해주었고 나아가 내가 좋아하는 가요의 기원에 대해서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 위대한 일들은 강요가 아닌 인내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사무엘 존슨)

페르메이르

2020/10/25 좀 말이 안되기는 하지만 사실 나는 네덜란드 델프트에 가본적이 있다. 암스테르담도 아니고 델프트라니 대학교 3학년 배낭여행 여행 책에 나온 델프트 소개를 보고 무턱대고 혼자 그냥 갔었다. 중앙 광장 어딘가 일층에 빵집이 있었던 건물, 그집 이층 숙소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아침 운하를 따라 벼룩시장을 둘러보며 파란색 델프트 도자기들을 구경했던 것 같은 기억이 아주 어렴풋이 난다. 그러고 나중에서야 진주 귀고리 소녀라는 소설을 보게 되었고 페르메이르라는 화가도 알게 되었고 그 화가가 평생 살았던 곳이 델프트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차 아쉬움 진주 귀고리 소녀를 먼저 알고 델프트에 갔더라면 훨씬 더 의미있는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그러고 또 한참 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출장을 갔..

작은 기쁨 채집 생활

2020/10/24 주변에 한두명 있을 것 같은 평범한 사람이 들려주는 반짝반짝 섬세한 이야기 괜찮은 표현, 괜찮은 문장이 꽤 많다. ----------------------- 밥그릇, 칫솔, 탁상거울, 집에서만 쓰는 안경, 매일 쓰는 것이 아름다워야 일상을 긍정할 수 있게 된다. 언제까지 예쁜 카페나 근사한 숙소로, 비일상으로 도망칠 수는 없으니 일상을 가꿔야 한다. 많은 폭력이 몰이해, 모름에서 온다고 믿는다. 뜻하지 않게 뭔가를 해쳤거나, 망가뜨렸다면 내가 무언가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나는 나를 잘 모르기 때문에 자주 나를 해친다. 그래서 덜 다치기 위해 시간이 남을 때마다 나에게 관심을 준다. 지난 일기도 다시 읽고, 사진첩도 뒤져 보고, 플레이리스트도 점검하면서. 이를테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