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있는 피리 846

스토너

2017/07/17 미국 작가가 쓴 장편소설 번역서를 잘 읽지 않는 나의 독서취향으로는 볼 때 우선순위가 한참 밀리는 데다, 책 표지 디자인이 예쁘거나 시선을 끄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이런저런 마케팅도 하지 않은 그런 책이었기 때문에 이 책을 읽었다는 것 자체가 나한테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던 것 같다. 지나고 보니 드는 생각이다. 금요일 과음으로 인해 매우 피곤한 주말이었지만 그래도 일단 주문한 책이니 몇장 넘겨보기라도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점점 빠져들게 되더니 정말 말도 안되게 몰입해서 읽어버렸다. 처음에는 뭐가 이렇게 밋밋하지? 미국 작가들도 이렇게 일본 작가들처럼 밋밋하게 글을 쓰기도 하는구나 하다가 왠지 모를 끌림으로 시작해 숨이 막히는 감동으로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평범하..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2017/07/10 지난 주말 아주 오랜만에 서점 산책을 하다 우연히 발견한 책이다. 페이지를 열어 몇 문장 읽어 봤는데 느낌이 좋다. 반가운 마음에 책을 사고 집에 와서 찬찬히 책을 넘겨보는데 저자가 97학번 78년생 여성 나보다 어린 여성 작가가 나하고 감성이 맞다니 내 감성이 그랬었구나 싶었다. 역시나 세상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고 나이나 성별과는 무관하게 고수들이 엄청 많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다. 이런 고수들 덕분에 세상이 풍요로와진다. -----------------------------------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중의 일부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 매일의 일상을 충실하게 살아가며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 한 번이라도 더 ..

나는 뻔뻔하게 살기로 했다

2017/07/07 살까 말까 고민의 경계선에 있던 책인데, 읽고 나서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괜찮은 책과 그렇지 못한 책의 그 어딘가 경계에 있는 책이다. 전체적으로 내용의 깊이는 없지만, 드문드문 멋진 문장들이 간간이 등장하는 그런 책이다. ------------------ 자존감이란 가장 허름한 상황에서도 나만은 나를 따뜻하게 지켜봐주는 것 모든 사람은 자기가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충족시키기 위해 살아간다. 그게 채워지면 막대한 금전적 손실도 웃어넘기게 되고, 반대로 묵살당하면 아주 사소한 일에도 목숨을 거는 경우도 있다. 사람이 무엇을 해야할 것인지를 말로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강한 사람은 자신의 힘을 만끽할 목적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다른 이를 같이 ..

상처의 교훈

2017/04/17 상처가 낫는데는 시간이 걸린다. 상처가 깊을수록 좀 더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고 낫지도 않은 상처를 계속 만지고, 딱지가 앉지도 않았는데 자꾸 건드리면 더 아플 뿐이다, 오히려 덧난다. 상처가 낫는데 시간이 걸린다라는 말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그 시간을 어렵게 어렵게 견뎌내는 과정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그렇게 하루하루 견뎌내면서 그렇게 직접 의연하게 이겨내야만 무언가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이런 것만이 진정한 지혜, 진정한 사람의 깊이로 연결된다. 그러면서 어른이 되는거 아닐까 싶다.

당신이 숲으로 와준다면

2017/03/09 언제부터인지 또 왜 그런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나는 나무를 참 좋아한다. 그냥 살아있는 나무도 좋아하고, 나무로 만든 가구나 다른 생활용품도 무척 좋아한다. 아무 불평 불만 없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에 맞게 스스로를 변화시켜가는 나무들의 모습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느낌과 함께 한편으로는 어떤 위로와 위안의 느낌을 받는다. 이 책에는 그런 내 느낌을 구체적으로 표현해 주는 구절이 있다. ---------------------------- 우리 사람들이 실수 혹은 실패가 주는 두려움에 갇혀 발을 내딛지 못하는 동안에도, 숲에 사는 나무들은 주저하는 법이 없습니다. 도피할 수도 없는 붙박이의 숙명을 받고 태어나 평생 빛과 양분을 향한 치열한 경쟁을 이어나가야..

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

2017/03/05 내일은 약 10년 만에 수원으로 출근하는 첫날이다. 진짜 엊그제 일 같은데, 대리로 입사한 나는 지금은 부장이 되었고 그 정도의 격차만큼 또 많은 것들이 변했겠지만, 잘 모르겠다. 10년이 짧은 시간인지 긴 시간인지 앞으로 10년도 지금은 먼 것으로 느껴지지만 막상 지나고 나면 생각보다 짧게 느껴질 것 같은 그런 생각도 든다. 10년전 입사 때와 비슷한 복잡한 감정이 드는 오늘! 직접 만난적은 없지만, 글로 인연을 맺은 내 인생의 멘토이신 법정스님의 글을 읽고 복잡한 감정을 좀 다스리고 싶다. ---------------------------------------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마음 써야 할 것은 오늘 만나는 이웃들에게 좀 더 친절해지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친구를 만..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2017/03/04 앞만 보고 달려와 조직의 가장 높은 부서에까지 올라왔으나 이러저러한 사태로 인해 조직은 해체되고, 잠시동안 갈곳 모를 신세가 되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오르는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도 있는 법 이런 당연한 진리도 직접 내려갈 때를 당하기 전까지는 실감하지 못하는 법이다. 머리로만 아는 것과 몸으로 경험하는 것은 이래서 다른 것이다. 이런 상황과 마찬가지로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가운데 한번 뿐인 인생을 마무리하게 되는 시점이 어느 순간 불쑥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 때도 비슷한 생각이 들겠지 뭐하러 그렇게 죽기 살기로 살아왔을까? 왜 그렇게 걱정하면서 살아왔을까? 순간순간 즐기지 못하고 쫓기듯 살아왔을까? 이번의 기억을 잘 새겨둘 일이다. ----------------------..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2017/02/20 가만히 생각해보면 류시화씨는 내게 중요한 영향을 준 작가 중 한명이다. -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 삶의 길 흰구름의 길 나의 인생관,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두 책의 편집 또는 번역자가 류시화씨다. 그래서 그런가 류시화씨의 신작 에세이를 읽으며 오랜만에 편안한 감동에 푹 빠져보는 좋은 경험을 했다. 엄청난 깨달음이나 자극을 받은 것은 아니다. 그냥 편안하게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매일매일 감동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어쩌면 선물처럼 주어진 이 지상에서의 짧은 시간을 충분히 느끼며 살아야 한다는 것, 다른 방법이 뭐가 있겠냐는 것 바쁘고 정신없이 살다보면 쉽게 잊혀지는 이 평범한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 사실 돌아보면 우리 삶은 감동할 것들로 넘쳐있다. 아침에..

어떻게 살 것인가

2017/02/17 나는 대체 언제부터 책을 좋아했던가 솔직히 말하면 책을 읽는 것보다는 그냥 책 사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한데 고등학교 때는 이런저런 문제집을 가득 사서 3단 책꽂이를 빽빽하게 채웠었고 대학 때는 부족한 생활비를 쪼개 가면서 학생회관 서점이나 학교 앞 서점에서 이런저런 책을 샀었다. 다른 돈은 아까운데, 이상하게 책 사는 돈은 아깝지 않았다. 뭔가 부자가 된 느낌까지 들었었던 것 같다. 그 때 읽었던 책들이 공지영, 은희경, 이문열, 윤대녕, 유홍준 등등 그리고 지금도 기억나는 재미있었던 책으로는 유시민씨가 쓴 거꾸로 읽는 세계사,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이 있다. 지금도 느낌이 생생할 정도로 아주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20년이 훨씬 지나 유시민씨의 새로운 책을 읽는데도 비슷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