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있는 피리 846

미움

2020/06/02 누군가를 미워하는 감정은 상당히 위험하다. 조금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정신적 살인이라고까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미워하는 감정은 날카로운 칼과 같아서 그냥 꾹꾹 참으면 그 칼이 나를 찌르게 되고 에라 모르겠다 하며 참지 않으면 마치 칼을 휘두르듯이 날카로운 말이나 행동으로 그 사람에게 상처를 줄 뿐만 아니라 십중팔구 나 역시 다치게 된다.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그런 위험한 감정에 내 마음이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어른스럽지 못한 모습인 것 같다. 어쩌자고 미워하는가? 정말 그 사람이 죽어버리기라도 바라는 것인가? 뭐하러 그래야 하는가? 그 사람이 죽으면 진짜 내 마음이 편할까? 선물처럼 주어진 이 짧은 인생을 그런 위험한 감정으로 보내기는 너무 아깝지 않은가? ..

결 : 거칢에 대하여

2020/05/27 그러니까 지금부터 약 25년전 대학시절,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라는 에세이를 통해 홍세화씨를 처음 만났었다. 세상에 그 책을 아직도 서재에 있다! 책 내용이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관용, 역지사지 등의 개념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만큼은 분명히 기억난다. 그러니 그 책이 아직도 책장에 있는 거겠지 대학교 같은과 선배이기도 해서 그런지 홍세화씨의 글은 언제 읽어도 참 친근하고 진실하다. 25년이 지나 다시 읽은 글에서도 따뜻한 인간미와 배려의 마음이 느껴진다. ------------------------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차이를 찾으려 애쓰고 자기와 다른 사람을 만나면 자기와 같지 않다고 시비를 건다. 이 모순적 태도는 남에 ..

좌절의 기술

2020/05/06 나는 종교가 없다. 굳이 내가 믿는 또는 진리라고 생각하는 종교 비슷한 것을 말하라면 철학적 의미에서의 불교와 스토아 철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스토아 철학은 글쎄 살아오면서 많이 들어보지 못한 것으로 볼 때 그렇게 유명한 철학사상은 아닌 것 같은데 어딘지 모르게 내 평소 생각과 같은 점이 많고 배울 것도 많은 그런 느낌이 드는 사상이다. 스토아 철학자들이 말해주는 인생전략이라는 책 소개를 읽자마자 그냥 구매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크게 새로운 것은 없으나 스토아 철학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 우리가 성숙했음을 보여주는 한가지 증거는 자신이 의도했든 아니든 주변사람들의 삶을 어느 정도로 ..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

2020/05/19 류시화씨의 책은 언제나 나를 정화시켜주는 맑은 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업무에 찌들고 관계에 지치고 그런 복잡한 마음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마다 류시화씨의 책을 읽으면 순간 마음이 맑아지는 경험을 했었다. 마음에 대한 주기적인 청소랄까 류시화씨의 책 때문에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류시화씨의 책 덕분에 내가 더 나쁜 사람은 되지 않았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청소를 한다고 집이 더 좋아지지는 않지만 청소를 안하면 집이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질 수는 있으니까 오래된 인도 우화집이라 함축적인 의미가 많아 그런지 모든 이야기가 다 와닿은 것은 아니지만 몇가지 이야기는 역시나 내 마음을 다시 한번 깨끗하게 해주었다. 감사합니다! ------------..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2020/05/15 언제부터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나무를 참 좋아한다. 살아있는 나무들이 계절마다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모습도 좋고 나무로 만든 가구의 따뜻한 질감도 좋고 그냥 나무에 대한 것들 다 좋아한다. ------------------------ 존재 자체만으로 편안함과 행복감을 주는 사람이 있듯 세상 모든 나무가 꼭 그렇다. 그저 있는 것만으로도 만물의 삶을 풍요롭게 보듬어 주는 존재가 바로 나무다. 우리가 가는 모든 길은 어떻게든 흔적을 남기게 마련이다. 이와 남길 흔적,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만들고 나와 함께해서 좋았다는 사람이 한명이라도 늘어나면 얼마나 보람일까 맞서 싸우지 않고 일단 한걸음 물러서서 부드럽게 우회할 줄 아는 것, 그것은 결코 지는 것이 아니다. 저 혼자 강하게 ..

소설보다 봄 2020

2020/05/13 이런 상큼한 기획을 누가 했는지 참 기발하다. 계절마다 단편소설 3편을 실어 귀여운 디자인의 작은 책을 내다니 책 내는 것도 부담이 없고 읽는 것도 부담이 없는데 뭔가 일상이 아름답게 채워지는 그런 느낌이 든다. 장류진 작가의 소설이 재미있게 잘 읽혀서 샀는데 정말 난해하게 읽었던 한정현 작가의 소설에서 반짝이는 글들을 많이 발견했다. 섬세하고 따뜻하고 그러면서 뭔가 깊은 위로가 된다. ------------------------------ 잔뜩 꾸미고 나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들어와 아무 설명 없이 그저 누워만 있어도 캐묻지 않는 사람 누구나 가끔씩은 모든 걸 답할 수 없는 그런 순간이 있다는 걸 잘 아는 사람 그러니까 내가 궁금하지 않아서 질문을 하지 않는게 아니라는 것을 느..

아무튼, 양말

2020/05/09 사실 양말은 아무거나 그냥 대충 신으면 된다고 생각하며 거의 평생을 살아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양말 이거 좀 좋은 것을 신어야겠다 생각하게 되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양말을 신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양말을 벗어 빨래통에 던지면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하루종일 나의 사회생활을 함께 한 친구같은 느낌이 든다. 집에 도착했으니 양말 너도 쉬고 나도 쉬어야지 이러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하루종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장 낮은 곳에서 나와 함께 같이한 그런 친구 그렇게 매일매일 나와 함께 일하고 술먹고 하는 그 양말 친구를 좀 업그레이드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인터넷으로 몇개씩 사보면서 테스트하고 있는데 아직 내 마음에 확실히 드는 그런 양말은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

서점의 말들

2020/05/09 요즘 서점에 갈 시간이 거의 없어 책을 온라인으로 주로 사고 있다. 책을 직접 보지 못하고 사게 되다보니 실패할 확률도 높아졌지만, 서점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특이한 책들을 만나게 되는 좋은 점도 있다. 이 책은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운영자 윤성근씨가 서점에 관련된 좋은 문장들을 모아 그 문장들에 자기 생각을 엮어 만든 에세이집인데, 그 골라낸 문장들이 참 좋다. 셈세한 울림이 있다고 할까? 다 똑같이 생긴 것 같지만 그 많은 책이 서로 흉내내지 않고 모두 다른 내용을 담고 있거든! 멋지지 않니? 이 문장을 읽고 부터는 내 책장의 책들이 갑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물론 서로 다른 이야기를 조용히 나누는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다. 마치 다양한 꽃들이 만개해있는 들판을 보는 것 같..